'수능 킬러 문항' 금지법?

박세미 기자 2021. 9. 29.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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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부 교사도 못 풀 만큼 난해
"선행학습 조장한다" 비판.. "상위권 변별에 필요" 주장도

“밀도가 균질한 하나의 행성을 구성하는 동심의 구 껍질들이 같은 두께일 때, 하나의 구 껍질이 태양을 당기는 만유인력은 그 구 껍질의 반지름이 클수록 커지겠군.” 지난 2018년 치러진 수능 국어 31번 문항 지문 일부다. 서양 우주론과 만유인력·질점 등을 다루는 내용으로 당시 “너무 어렵다”는 불만이 거셌다.

이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상위권 수험생을 변별하기 위해 나오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이 28일 발의됐다. 대표발의한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은 “이런 문제가 고등학교 교실을 기계적 문제풀이 중심 전근대적 공간에 머무르게 하는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강득구, 강은미, 김의겸 등 범여권 의원 10명도 발의에 참여했다.

이번 개정안은 초·중·고교와 대학 선행학습 유발을 금지하기 위해 2014년 시행한 공교육정상화법을 보완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공교육정상화법은 학교 중간·기말고사나 수행평가, 교내 대회와 대학별 고사(면접·논술) 등이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을 넘어선 내용을 평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수능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있어 이른바 ‘킬러 문항’처럼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선행학습 금지 대상에 ‘수능’을 새롭게 명시하고, 매년 수능 문항이 고등학교 교육과정 범위와 수준을 벗어났는지 교육부가 관리·감독하도록 했다.

그동안 고교 현장에서는 일부 수능 ‘킬러 문항’이 상위권 학생을 변별한다는 명분으로 어렵게 나오는 건 교육적으로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몇몇 문항은 교사들도 풀지 못하거나 상위권 학생들도 찍는 수준이라 사고력 측정이라는 수능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난 2019년엔 교육시민단체 등이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수능으로 공교육을 신뢰한 학생들에게 피해를 줬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이 “공교육정상화법이 규율하는 대상에 수능이 포함되지 않고, 출제위원 재량권으로 볼 수 있다” 등의 이유로 기각했고, 이 때문에 강 의원 등이 이번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킬러 문항 금지가 사실상 ‘쉬운 수능’을 강제하는 것이고, 실효성도 떨어질 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주요 대학 정시 비중이 확대된 상황에서 상위권 변별은 반드시 필요한데, ‘킬러 문항’을 금지하면 수능 변별력이 약해져 내신이나 논술·면접 등 다른 대입 전형의 영향력만 커진다는 것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한꺼번에 50만명이 보는 국가시험인 수능은 일정한 변별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종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문제라고 이를 무조건 선행학습을 유발한다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수능은 출제 기간 고교 교사들이 검토위원으로 들어가 고교 교육과정 위반 여부를 모두 점검하고 있다”며 “킬러 문항을 금지하면 상위권 변별을 위한 더 지엽적이고 꼬인 문항만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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