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야당은 윤희숙의 염치를 벌써 잊었나

2021. 9.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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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의원 2주 전 사퇴하며 강조한
“부끄러움 아는 사람들의 정치”
野 의원들 다시 뻔뻔한 행태 보여
文 정권 몰염치 비판할 자격 있나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13일 국회에서 열린 제391회 국회(정기회) 제04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자신에 대한 사직의 건 투표에 앞서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윤 의원의 사직의 건은 가 188표, 부 23표, 기권 12표로 가결됐다. (공동취재사진) 2021.09.13. photo@newsis.com

“눈처럼 새하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부끄러움은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달 전,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아버지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되자 사퇴 의사를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여당은 ‘사퇴 쇼’라 비난하고 야당은 ‘의원직을 던질 만한 일이냐’고 만류했지만, 그는 “정치인은 세상에 내보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2주 뒤 끝내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내로남불’, 위선, 불공정이 일상화된 문재인 정권과 여당에 맞서 야당 초선 의원이 자신을 내던져 보여준 염치와 상식의 정치였다. 그때 야당은 윤 전 의원의 결단에 응원을 보내며 대여 공세에 몰두했다. 여권에 비해 확실한 도덕적 우위를 확보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윤 전 의원의 결단이 남긴 유산은 불과 2주 만에 허사로 돌아갈 판이다. 남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를 반복하면서 문 정권의 몰염치를 비판할 자격을 자진 반납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곽상도 의원은 아들이 자기 소개로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시행사인 화천대유에서 6년간 근무한 뒤 퇴직금·위로금 등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아 논란을 빚고 있는데 “회사가 벌었으니까 형편이 되니까 준 것 아니겠냐”고 했다. 스스로 “아들은 부동산 시행 사업을 구체화하는 일을 말단 직원으로서 했다”면서도, 그 말단 직원이 웬만한 대기업 사장 퇴직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은 데 대해선 당연하다는 ‘유체 이탈’ 화법의 극치를 보여줬다. 박탈감에 시달리며 분노하는 국민을 향해 한마디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다. 당 지도부 또한 곽 의원 아들의 ‘50억 퇴직금’을 사전 확인하고도 묻어뒀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장제원 의원은 가수인 아들이 무면허 운전을 하다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되자 사과 대신 “국회의원으로서 아들 문제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어떤 고려도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해주기를 사법 당국에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뒤집어보면 이상한 말이다. 국회의원 아들은 범법 행위를 해도 수사 과정에서 특별한 고려를 받을 수 있고 의원인 부모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건가. 장 의원의 이런 반응에 ‘3선 의원으로서 특권 의식이 몸에 뱄으니 아들까지 저러는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은 더욱 확산됐다. 그는 사건 열흘 만인 28일 ‘자식 잘못 키운 죄를 반성한다’며 윤석열 후보 캠프 상황실장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의원직 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16만명 이상이 동의하고 있다.

권익위에서 본인이나 가족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지적당해 탈당 권유를 받았던 의원들 거취 문제도 윤 의원 사퇴 이후 유야무야됐다. 당 지도부는 심지어 그중 한 의원에게 “당원 배가 운동에 큰 성과를 냈다”며 표창장까지 줬다. 여당조차 부동산 관련 권익위 지적을 받은 의원 가운데 비례대표 2명은 출당시켰는데 야당은 그마저도 아예 손을 놓고 있다. 당 전체가 윤희숙 전 의원의 호소를 완전히 망각한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한때 도덕적 파산선고를 받았던 야당은 4년여 악전고투 끝에 얼마 전 정당 호감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을 5%포인트 차로 앞서는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같은 조사에서 야당 호감도는 여당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냉혹한 민심은 이렇게 수시로 방향을 바꾸며 여야를 저울질하는데 야당은 벌써 배가 불렀는지 국민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염치와 상식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권 교체 의지가 과연 진심인지부터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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