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 그레이트 게임’ 눈감은 文
지난주 중국 외교부 브리핑의 최대 이슈는 지난 15일 발족한 미국·영국·호주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였다. 호주는 미·영의 지원 아래 공격형 핵(核)잠수함 8척을 건조할 예정이다.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호주는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다. 호주가 핵잠수함을 보유하게 되면 “핵무기는 없지만 핵잠수함을 가진” 첫 사례가 된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미·영은 호주에 (핵잠수함 연료로) 90% 이상 고농축 우라늄을 수출할 가능성이 있다”며 “호주가 이를 핵무기로 전용할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24일 브리핑에서는 “(핵잠수함 수출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을 자극해 지역 내 비핵화에 심원(深遠)하고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던진 이번 승부수가 30년 이상 미래를 내다본 것이라는 점이다. 호주가 채택할 가능성이 있는 영국의 애스튜트급 핵잠수함은 2001년 건조를 시작해 현재 4대가 운용 중이다. 건조부터 취역까지 한 대당 10년이 걸린다. 호주가 2025년부터 핵잠수함을 만들기 시작해도 2035년에야 첫 잠수함을 바다에 띄울 수 있고 본격적인 전력화는 2040년 이후에야 가능하다.
중국은 이미 6척의 핵잠수함과 수백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대잠수함 탐지 능력을 비롯해 중국의 군사·기술력이 계속 발전한다면 2040년엔 호주 핵잠수함이 중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중국이 이렇게 발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커스가 대중 압박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필리핀을 찾아 방문군 지위협정을 계속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필리핀에 입국하는 미군에 대한 비자 면제 근거가 되는 협정이다. 필리핀은 오커스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밝혔다. 9월 중순에는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이 베트남을 방문해 일본 군사 장비·기술을 베트남에 이전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그 뒤에는 미국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다음 수를 놓을 곳으로 한국·일본을 예상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군축국장을 지낸 사쭈캉(沙祖康) 중국군축협회 명예회장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최근 몇 년간 미국은 한국 등 국가에 대해 미사일 개발 제한을 풀었다”며 “중국에 대한 전략 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북핵 억제 수단이라고 보는 한국과는 인식 차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종전(終戰) 선언을 하자고 했다. 동행한 BTS만큼도 주목받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새 판을 짜는 ‘태평양 그레이트 게임’ 한복판에 있다. 엉뚱하게 ‘선언’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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