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칼럼]가장 엄중한 시기, 가장 준비 안 된 후보

이중근 논설주간 2021. 9.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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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역대 대통령을 외교안보 역량으로 분류하는 단계가 있다. 첫째는 자기 고유의 정책을 세우고, 주변국까지 자기 페이스로 이끌어간 경우이다. 햇볕정책의 김대중 대통령과 ‘외교 귀신’이었다는 이승만 대통령이 이 범주에 든다. 김대중은 일찍이 자신만의 통일론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정립한 뒤 끊임없이 연마해 햇볕정책을 폈다. 이승만은 동서 이데올로기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노련한 외교술로 국가의 명맥을 유지했다. 다음은 시대의 흐름을 읽은 참모들을 기용해 외교안보 정책을 착실히 수행한 경우다. 북방외교로 한국 외교의 전환점을 마련한 노태우 대통령이 이에 속한다. 이어 한반도 상황을 관리해나가는 수준의 대통령들이 자리하고, 마지막으로 남북관계 진전은커녕 주변국과의 관계마저 악화시킨 부류가 있다. 뜬금없이 독도를 방문해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이명박이나 중국 잔치 때 톈안먼 망루에 섣부르게 올랐던 박근혜가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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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교안보 상황의 엄중함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변화무쌍에 절체절명의 국면이다. 날마다 이런 외교안보 현안을 다루어나가야 하는 차기 대통령에게서 외교안보 역량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토론, 특히 지난 25일 있었던 2차 토론 장면은 우려를 넘어 절망스러웠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윤석열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무지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다른 후보의 공약을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베꼈다는 비아냥은 그런대로 넘겼다. 그런데 전역 장병에 대한 지원 정책을 소개하다 “주택이 없어 청약통장을 만들지 못했다”고 한 것은 귀를 의심케 했다. 가장 기초적인 정책에 대한 이해조차 없음을 드러냈다. (전시 대북 군사작전) 작계 5015에 대한 언급 또한 그의 외교안보 정책의 이해 수준을 고스란히 폭로했다. 윤 후보는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다 “우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겠다”고만 대답했다. 군 통수권자로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한 것에 대한 질문에도 “(담화를) 언제 했느냐”고 반문했다.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이해는 물론 관심조차 없음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특히 외교안보에서는 구사하는 언어를 보면 그 인식의 수준이 단박에 드러난다. 정책을 온전히 내면화하고 있는지, 아니면 억지로 머릿속에 욱여넣었는지 바로 보인다. 만약 윤 후보가 그날 작계의 본령만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홍 후보의 공격적 질문이 들어왔을 때 간결한 언급으로 되받아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박은커녕 내내 더듬거리고 당황했다. 토론회 3일 전 11개 분야 100여개 공약을 발표했는데, 각론은 고사하고 총론조차 소화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꼴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외교안보에서 치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은 덕분이다. 대통령이 직접 대강을 잡고 보좌진의 조언을 들으며 현안을 풀어야 그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최근 윤 후보 캠프 내 외교안보 전문가들 간 알력이 있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 또한 후보가 스스로 중심이 될 만큼 상황을 장악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윤 후보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지 석 달 동안 정치 기술은 배웠을지언정, 국정 운영을 위한 정책을 공부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토론에서 확인됐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윤석열 사랑은 여전하다. 집권을 위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외교안보 등 허다한 정책 역량의 부족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경험이 부족하지 자질이 부족하냐는 말로 분식한다. 차기 대통령에게 김대중급 역량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들이닥친 외교안보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면서 적어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지 않을 소양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상명하복의 검찰 조직을 지휘하는 것과 민주적 리더십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건 천지차이다.

지난 6월 국민의힘은 의원 경력이 전무한 37세 이준석을 대표로 뽑았다. 다시 그 각오와 눈으로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윤 후보를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문재인을 향한 날선 비판의 10분의 1만이라도 윤 후보에게 적용시켜보라. 그 결과에 따라 윤 후보를 손절매할 생각까지 해야 한다.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를 중간지대 유권자들이 ‘외교안보 초보자’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점을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유의해야 한다.

이중근 논설주간 harub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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