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엉덩이 탐정·오징어 게임.. 패러디 한 방으로 반전 노린다

이기문 기자 2021. 9. 29.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슈 플러스] 쏟아지는 정치 패러디

‘오십억 게임.’

27일 곽상도 당시 국민의힘 의원 아들(31)이 ‘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보도가 전해지자, 화제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게시물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뒤덮었다. 이 드라마의 핵심 설정은 죽음의 게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상금 456억원을 받는다는 것. 그의 퇴직금 50억원을 제목으로 비꼰 것이다. 대선으로 뜨거워지는 정치판에서 ‘오징어 게임’처럼 대중의 주목을 받는 콘텐츠는 패러디 영순위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는 페이스북 계정에 ‘허경영 게임’ 패러디물을 내세웠다. “목숨 걸고 힘들게 게임하지 마세요.” 포스터엔 주인공 배우 이정재 대신 허경영이 등장해 ‘모든 국민에게 1억원·매월 150만원 지급’ 공약을 선전한다.

◇셀프 홍보 VS 저격

풍자와 비판의 화살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이번 추석엔 화천대유 하세요.” 지난주 추석 연휴엔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한복을 입고 보름달을 배경으로 명절 덕담을 건네는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이 지사가 성남 시장 시절 추진한 대장동 개발 사업에서 1000배에 가까운 수익률을 거둔 화천대유의 ‘대박’을 에둘러 조롱하는 사진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해당 사진을 페이스북에 실어 날랐고,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유튜브 영상으로 “화천대유 하세요”라 인사하며 이 지사를 저격했다. 같은 당 대선 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달 인스타그램에 반려견 토리와 침대 위에서 찍은 휴가 사진을 공개했다가, 닮은꼴로 지적받던 애니메이션 캐릭터 ‘엉덩이 탐정’ 패러디가 생겨났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원래 의도와 달리, 네티즌은 “민낯에 잠옷 차림의 침실 사진이 부담스럽다”는 차가운 평가를 내리며 윤 전 총장의 실물을 지우고 캐릭터 그림을 그려넣었다.

여야 대선 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홍준표 의원은 패러디물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추 전 장관은 유튜브에 출연해 음료 ‘미에로화이바’를 패러디한 언어유희 ‘미애로합의봐’를 내세워 자신을 홍보했고, 홍 의원은 과거 인기 예능 ‘무한도전’ 속 장면에 자신이 내세우는 별명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을 덧입혔다.

◇사라진 방송 풍자, 온라인에서 활개

정치 패러디물 생산의 진원지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디지털문화정책 교수는 “패러디는 유쾌 발랄하면서도 권력의 비린 곳을 적절히 드러낸다”며 “온라인 패러디물은 한번 알려지면 순식간에 확산돼 권력 집단을 웃음거리로 만든다”고 분석했다. 대중 친화적이고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당한 입장에서도 화를 내기 어렵다. 패러디의 근본 정신이 풍자인 탓에, 자칫 속 좁은 사람 취급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정치 풍자나 패러디 코미디언들을 TV에서 만나보기는 어렵다. 공정성 시비는 물론, ‘우리 편’에만 호응하는 진영 정치 탓이다. 방송에서는 자취를 감췄고 유튜브·커뮤니티 등 온라인에서만 성행하고 있다. 과거 KBS2 ‘개그콘서트’, tvN ‘SNL 코리아’ 등 예능에서 선보였던 정치 풍자 코미디는 진영으로 갈린 양쪽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으며 폐지됐다.

유튜버로 전향한 코미디언 최국(46)씨는 “예전에는 시청자들이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패러디가 웃기면 박수를 보냈지만, 요즘은 지지 정당이나 후보를 조금만 비꼬는 발언을 해도 극렬 지지자들이 몰려와 개그맨과 프로그램을 공격한다”며 “정치 풍자를 하려면 국민 절반은 적으로 돌릴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코미디언은 입을 다물거나, 나처럼 유튜브에서 개인 방송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웃자고 하는 패러디를 모욕으로 받아들이면 소송전(戰)이 벌어진다. 에이미 베커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정치 풍자 코미디가 후보 호감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조롱을 받았을 때 방어하기보단 유머로 맞받아치는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