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우울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2021. 9.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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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올해 우울증 환자의 숫자가 이미 7월에 작년 숫자 대비 83%에 육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코로나19 시대 우울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오랜 기간 9월만 되면 이유 모를 우울감에 시달렸다. 명색이 상담학자인데, 난 그저 ‘가을 타는 남자’인가보다 여기면서 버텼다. 그러던 어느 해 9월, 한국을 방문 중인 미국의 저명한 가족치료사에게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 중 이런 계절성 우울증에 대해서 다루다가, 나는 질문 몇 마디에 그만 폭풍 같은 눈물을 토해냈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9월은 오래전 돌아가신 선친의 기일이 있는 달이다. 60세를 갓 넘긴 나이에 작고한 선친의 삶이 내 무의식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상담 중 나는 선친처럼 65세 이전에 사망할 시 매우 높은 보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내 생명보험을 설계해 놓은 사실을 재고하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나의 무의식은 짧고 굵게 사는 내 인생을 예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잊고 살았던 선친의 죽음을 다시금 애도하면서, 나는 서서히 계절성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과도한 생명보험 설계를 바꾸어 자녀를 위한 건강보험으로 변경했다. 뼈아픈 상실일지라도 충분히 애도하고 다시금 누군가와의 연결을 시도하는 것이 편집증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벗어나 내면의 면역을 강화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9월이 찾아왔다. 지난주 칠순이 넘은 선배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학회모임에 내가 빠질까봐 확인전화를 한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학회모임에 참석하고 노교수 두 분과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여느 때처럼 대선 후보들 이야기, 부동산정책, 그리고 북한의 핵 위기 대처까지 한반도를 들었다 놨다 하는 담화가 이어졌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갑자기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두 노교수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해석해보라고 요청했다. 상담 분야 강의로 평생을 바쳐온 두 분이 굳이 후배에게 해석을 요청한 이유가 궁금했다. 두 분의 꿈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큰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와 각자 신발을 신고 사라졌는데, 자신의 신발만 없어졌다는 꿈, 그리고 사람들과 큰 건물에 함께 있다가, 홀로 남은 도포 입은 사람이 어두운 방으로 사라졌는데, 도저히 무서워 자신의 방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꿈이었다.

나는 전문적인 꿈 해석을 정중히 사양하고, 꿈꾼 후 두 분의 기분에 대해 물었다. 새벽에 일어나 인터넷 검색까지 해보셨다는 노교수는 신발을 잃어버리는 꿈이 명예나 부, 혹은 친구를 잃는 경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또 다른 노교수는 도포 입은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외국으로 이주하려고 준비하는 외동딸의 모습일지 모르겠다는 해석을 했다. 난 분명 감정을 물었는데, 두 분 다 학자답게 나름의 해석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법한 해석 속에서 모든 연결망에서 끊어지는 노년의 두려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우울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나는 두 상담학 노교수들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구나 버려짐의 느낌을 공유하고 애도할 수 있는 안전한 카페공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카페는 이젠 물리적 공간보다 안전해 보이는 가상의 공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애도의 공간이 되진 못한다. 나는 친구에게 ‘좋아요’를 수없이 눌러주었건만, 친구는 왜 내 사진에 댓글 한 번을 안 다는지 열이 받는다. 결국 모두에게 자꾸 거절감과 유기 경험을 반복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

문득 전날 내게 전화를 했던 노교수의 마지막 말씀이 생각났다. “연락이 안 와서 섭섭한 사람이 있으면 그냥 내가 먼저 전화하면 돼. 그럼 다 해결돼!” 그날 저녁 나는 용기를 내어 몇 통의 전화를 걸었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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