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가교육위의 과제, 초·중등 자치 확장과 협치
[경향신문]
국가교육위원회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교육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나는 지금 한국에선 두 개의 정치가 작동한다고 이야기해왔다. 하나는 투쟁의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공존의 정치이다. 지난 시기엔 투쟁의 정치가 거의 전부였다. 교육의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은 공존의 정치가 대폭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바로 공존의 정치를 선도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국민이 아쉬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협치’를 천명했으면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협치는 정치와 무관하다는 선언이 아니다. 공존의 정치를 통해 다수자는 반대하는 소수자와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소수자는 ‘묻지마 반대’에 빠지지 않는 열린 자세를 갖춰야 한다.
지금은 여당이 국가교육위원회법을 통과시키니까 진보적 의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지지만, 그렇지 않다. 당초 이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이 참여하는 교육계의 공동요구였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요구였다. ‘교육문제의 탈정치화’라는 시각에서 정권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국가교육과정 등의 방향을 설계하고 협의 및 합의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였다.
더구나 이번 법안에서는 국가교육위원회 위원 구성과 출범 자체를 1년 후에 시행하도록 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국가교육위원회 구성을 완료하면 또 다른 편파 시비가 일어날 수 있고 출범부터 정치적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이 한국 교육의제들에 대해 국민 공통의 의사를 모아 결정하는 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수자는 반대하는 소수자와 접점을 찾으려는 책무를 가지고, 소수자는 다수자의 추진의제에 ‘묻지마 반대’를 하지 않는 열린 자세를 가지면서,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비전과 중장기적인 정책 방향에 대한 진정한 협의 및 협치기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국가교육위원회가 기존의 일원적 교육정책 결정구조, 즉 교육부가 모든 권한을 가지고 시·도교육청을 실행기구로 하는 하향식 구조를 넘어서 삼원적 협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장기 교육정책은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의 중앙통괄은 교육부가, 초·중등교육은 시·도교육청이 담당하는 구조다.
이 점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이 초·중등교육을 보다 전면적으로 지방에 이양하는 교육자치 실현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교육자치 정책협의회’를 통해서도 이 같은 이양 준비를 해왔다. 그런데 이는 ‘포지티브 방식’, 즉 가능한 이양 대상 목록을 작성하는 방식이었다. 차제에 이를 ‘네거티브 방식’, 즉 전면 전환을 전제하고 불가피하게 남겨야 할 것을 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시적 규정이 없는 한 교육부는 보충적 역할에 그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물론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이 학교를 관리하는 상층 교육행정기구의 확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교육부 인력구조 재편 없이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 이제 교육부, 시·도교육청 외에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옥상옥’ 기구가 하나 더 출현하는 셈이 된다. 최대치의 우려를 상정하면, 국가교육과정을 담당하는 몇 명의 인력만 교육부에서 국가교육위원회로 이동하고, 국가교육위원회가 국가기구로서 작동하기 위한 100~200명의 인력을 새로 충원하는 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진정으로 옥상옥이 된다. 그런 점에서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의 관련 인력을 한편에서는 전면적으로 국가교육위원회에 배치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도교육감협의회 사무국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면서 교육부가 담당하던 관리기능의 거의 대부분을 사무국이 맡게 해야 한다. 이 같은 변화 위에서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해야 한다. 지금의 교육은 모두에게 희망의 주제인 동시에 절망의 주제가 돼 있다. 1년 뒤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가 한국 교육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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