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법 고쳐야 청년이 산다

2021. 9. 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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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변화 못따라가는 낡은 노동법
노조 힘만 키우고 신규 채용 막아
노동유연성 높여야 일자리 늘 것
이동근 < 경총 상근부회장 >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전과 코로나발 경제충격이 몰고 온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산업 전반에서 디지털화, 자동화가 급속히 추진되면서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 더구나 청년 세대는 이전 세대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평생직장 개념이 옅어지고, 호봉보다는 일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세상이 바뀐 만큼 우리를 둘러싼 제도도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노동법은 어떤가. 산업화 이전의 집단적 공장제 노동을 규율하기 위해 70여 년 전 만들어진 틀 그대로다. 강산이 일곱 번 변하는 동안 경제는 내달렸지만, 노동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런 낡은 제도로는 노동시장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또한 경직적인 노동법은 이미 노동시장에 진입한 근로자에게만 유리할 뿐, 청년·여성 등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물관에나 가야 할 정도로 낡고 경직적인 노동법으로 ‘내 일(my work)’을 찾지 못한 청년들은 다가올 ‘내일(tomorrow)’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 노동법제에서는 효율적인 인력운영이 어렵다. 직무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근로자와의 근로관계 종료는 물론 경영 위기로 인한 불가피한 인력 조정도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해외 기업들의 몸부림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이처럼 인력운영의 숨통이 좁다 보니 기업은 신규채용을 기피하고, 청년은 노동시장에 들어올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또한 상황 변화에 맞춰 근로조건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다. 노조 동의를 얻지 못하면 제아무리 합리적이더라도 근로조건을 변경할 수 없다. 까다로운 요건과 절차 때문에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기도 어렵고, 연공형 임금체계를 일의 가치나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정년을 앞둔 근로자 1명의 인건비가 신입직원 3명의 인건비와 맞먹는 상황에서 기업은 청년 채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생산방식을 유연하게 활용하기도 어렵다. 기간제나 파견 근로자는 최대 2년까지만 사용할 수 있고, 파견은 32개 업무에만 활용할 수 있도록 사유까지 제한한다. 일본 독일 등 경쟁국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 업무에 파견을 허용하고 있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기간제 및 파견 사용제한으로 전체 고용이 약 3% 줄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더욱이 파견 근로자 보호를 목적으로 한 파견법이 하도급(협력사)의 적법성 유무를 재단하는 잣대가 되고, 원청회사에 협력사 직원을 직접 고용토록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주 52시간제, 정규직 전환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 일련의 조치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 등 단결권 강화에만 중점을 둔 노동법 개정도 기존 근로자에게만 유리할 뿐, 청년 고용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글로벌 경제와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기업들이 선제 대응해 경쟁력을 갖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경직성 해소와 노사관계 선진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만 절망과 체념에 빠진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더 많이 줄 수 있고,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

경직성 해소가 해고를 쉽게 하고 근로조건을 무조건 낮추자는 게 아니다. 그간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고 근로조건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만큼, 그에 상응하도록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를 완화하고, 일의 가치와 성과에 따라 보상받도록 하며, 다양한 생산방식을 보장하는 유연화 조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세계는 지금 변화에 누가 얼마만큼 빠르게 대응하느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제라도 전근대적인 노동법을 유연하게 고쳐야 미래를 짊어진 청년이 살고,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도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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