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종전선언 제안 부적절" [세상을 보는 창]
꽉 막힌 남북관계 개선 '마지막 승부수'
美·中 갈등 상황 대미관계 악영향 우려
차기정부도 부담, 사실상 실현 어려워
정의용 외교장관 中 두둔 발언도 문제
대북 억지력 강화·대화 노력 병행해야
상호주의 입각 대북정책 재검토 필요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는.
“정부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종전선언 참가국에 중국까지 포함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나 비핵화 문제에서 중국을 행위자로 삼겠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사전에 미국과 얼마나 소통했는지 우려된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남·북·미·중 회담은 성사되기 어렵다. 미국 입장에선 불편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형태의 종전선언은 미국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대미 관계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종전선언 제안에는 그런 비용을 치르고도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중국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
“북한 비핵화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외교적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대북 억지력을 강화해 외교적 노력과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한·미동맹이 북핵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할수록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그나마 생긴다. 그런데도 억지력보다는 대화에, 그것도 무조건적인 관여에 방점을 찍은 게 아쉽다. 북한은 시간만 끌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미국 본토 미사일 방어망을 뚫지 못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일차적인 핵 위협에 노출되는 건 한국이다.”
─대화를 하되 억지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북한이 2019년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 바로 다음날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한 이후 남북관계는 ‘병리적’ 관계다.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해도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 간 관계는 협상이고 밀고 당기기인데 당기기만 하고 있지 않나. 우리에게 협상력이란 게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대북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종전선언을 승부수로 던진 건 적절치 않다. 북한은 지난해 1월부터 철저한 코로나 방역체계를 구축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온다고 해도 남·북·중이 모이는 모습은 대미관계를 생각할 때 좋지 않다. 차기 정부에도 큰 부담이 된다. 대북정책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 개입이 아니라 상호주의가 돼야 한다. 정부는 그간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정리하고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차기 정부에 넘겨주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북한을 외교안보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니 대미관계 등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닌가.
“정부 대외정책의 핵심은 남북관계다. 미·중의 이해가 부딪치는 곳이 한반도라면 모든 문제를 다차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정책을 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거꾸로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미·중관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방향으로 간다. 도그마적인 수준에서 남북관계를 앞세우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뒤로 밀린다.”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협의체) 출범 등 미국의 대중 견제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우리가 들어가고 싶다고 해도 미국이 문을 열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여기에는 상당히 고급정보, 중국 감청자료까지 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신뢰 문제가 있다. 일차적으로 내년으로 넘어갈 테니까 차기 정부가 대중정책과 한·미동맹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미 행정부도 마지막까지 고민할 가능성이 있다.”
─외부환경은 급변하는데 대선주자들은 외교안보 이슈에 둔감하다.
“큰 전략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피해를 보지 않고 이득만 취하려고 해선 안 된다. 미국의 여러 문제들로 미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훼손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을 대안으로 얘기할 순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미국과 함께 가야 한다. 한국은 한·미동맹에 대해 이중적 생각을 갖고 있다. 비용은 최소화하고 이득만 많이 가지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비용과 책임을 함께 나누면서 한·미동맹을 지금보다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함께 끌고 가야 한다. 한국이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고 군사력은 6위인데도 왜 수세적으로만 가는가. 우리와 같은 입장과 생각을 가진 나라들과 함께 적극적·능동적으로 국제질서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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