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종전선언 제안 부적절" [세상을 보는 창]

원재연 2021. 9. 2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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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꽉 막힌 남북관계 개선 '마지막 승부수'
美·中 갈등 상황 대미관계 악영향 우려
차기정부도 부담, 사실상 실현 어려워
정의용 외교장관 中 두둔 발언도 문제
대북 억지력 강화·대화 노력 병행해야
상호주의 입각 대북정책 재검토 필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임기 말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그동안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정리하고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차기 정부에 넘겨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상윤 기자
한반도 종전선언이 또 논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제안하면서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의 진전과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했지만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커지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관련 당사국인 남·북·미·중 모두 생각이 다른 데다 현재 한반도 정세를 감안하면 실제 종전선언이 가시화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문재인정부가 종전선언을 마지막 승부수로 던진 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대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내년 출범할 차기 정부에도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를 지난 24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는.

“정부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종전선언 참가국에 중국까지 포함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나 비핵화 문제에서 중국을 행위자로 삼겠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사전에 미국과 얼마나 소통했는지 우려된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남·북·미·중 회담은 성사되기 어렵다. 미국 입장에선 불편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형태의 종전선언은 미국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대미 관계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종전선언 제안에는 그런 비용을 치르고도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중국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런 쪽으로 이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대담 내용 전체를 보지 못했지만, 국내 언론에 일부 보도된 것만 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유엔에서 밝힌 내용이다. 미국을 비판하던 목소리가 들리는 건 사실이다. 중국을 활용해 남북관계를 돌파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이 미국 쪽에 경사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발언인 듯하다.”
─정부는 ‘평화를 통한 비핵화’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핵 문제를 우회해서 평화로 갈 수는 없게 된 것 아닌가.

“북한 비핵화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외교적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대북 억지력을 강화해 외교적 노력과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한·미동맹이 북핵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할수록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그나마 생긴다. 그런데도 억지력보다는 대화에, 그것도 무조건적인 관여에 방점을 찍은 게 아쉽다. 북한은 시간만 끌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미국 본토 미사일 방어망을 뚫지 못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일차적인 핵 위협에 노출되는 건 한국이다.”

─대화를 하되 억지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북한이 2019년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 바로 다음날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한 이후 남북관계는 ‘병리적’ 관계다.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해도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 간 관계는 협상이고 밀고 당기기인데 당기기만 하고 있지 않나. 우리에게 협상력이란 게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대북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성과가 없지는 않다. 2017년과 2018년의 대북정책은 후하게 평가할 수 있다. 2017년 북한이 도발했을 때 정부는 규탄하는 메시지를 내고 상응조치도 했지만 대화의 문은 열어 뒀다. 이게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해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작동했다.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한 것도 맞다. 그래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과 10월 스톡홀름 실무회담이 깨진 뒤에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 2018년 레거시(유산)는 남겨두고 새로운 국면에 맞는 정책을 폈어야 하는데 일방적인 관용으로 접근하다가 어려움에 빠졌다.”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대북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종전선언을 승부수로 던진 건 적절치 않다. 북한은 지난해 1월부터 철저한 코로나 방역체계를 구축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온다고 해도 남·북·중이 모이는 모습은 대미관계를 생각할 때 좋지 않다. 차기 정부에도 큰 부담이 된다. 대북정책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 개입이 아니라 상호주의가 돼야 한다. 정부는 그간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정리하고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차기 정부에 넘겨주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북한을 외교안보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니 대미관계 등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닌가.

“정부 대외정책의 핵심은 남북관계다. 미·중의 이해가 부딪치는 곳이 한반도라면 모든 문제를 다차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정책을 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거꾸로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미·중관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방향으로 간다. 도그마적인 수준에서 남북관계를 앞세우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뒤로 밀린다.”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협의체) 출범 등 미국의 대중 견제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에 정답이 있다. ‘중국’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중국을 견제한다는 점과 대만 문제는 평화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5G·6G 네트워크 등 경제협력도 강화키로 했다. 이것들은 우리나라 정체성의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답을 마련해 놓고도 계속 부인한다. 5월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이건 중국을 견제하는 게 아니다’고 하자 중국에선 ‘누굴 바보로 아느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미국으로서도 한국이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다른 얘기를 하니까 의구심이 든다. 정답(원칙)을 바꾸는 건 두 번 손해보는 것이다. 5월에 마련된 원칙을 좁혀서 말하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다. 이런 원칙을 준수하면서 개별 사안에 대응하면 된다.”
─미국과 4개 동맹국의 정보 공동체 ‘파이브아이즈’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는.

“우리가 들어가고 싶다고 해도 미국이 문을 열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여기에는 상당히 고급정보, 중국 감청자료까지 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신뢰 문제가 있다. 일차적으로 내년으로 넘어갈 테니까 차기 정부가 대중정책과 한·미동맹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미 행정부도 마지막까지 고민할 가능성이 있다.”

─외부환경은 급변하는데 대선주자들은 외교안보 이슈에 둔감하다.

“여야 모두 아쉬운 점이 있다. 현안 위주로만 얘기한다. 세계 정치질서가 바뀌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전략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미·중관계를 정확히 얘기하지 않고 한·미동맹과 북한 문제에 대해 지엽적인 얘기만 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에게 외교안보 전략을 조언한다면.

“큰 전략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피해를 보지 않고 이득만 취하려고 해선 안 된다. 미국의 여러 문제들로 미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훼손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을 대안으로 얘기할 순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미국과 함께 가야 한다. 한국은 한·미동맹에 대해 이중적 생각을 갖고 있다. 비용은 최소화하고 이득만 많이 가지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비용과 책임을 함께 나누면서 한·미동맹을 지금보다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함께 끌고 가야 한다. 한국이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고 군사력은 6위인데도 왜 수세적으로만 가는가. 우리와 같은 입장과 생각을 가진 나라들과 함께 적극적·능동적으로 국제질서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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