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처리 임박 언론중재법 개정안 "언론 겁박 시대" 우려
8인협의체 여야 원내대표 협상 최종결렬 가능성…29일 오전 담판 후 본회의 상정
"법 수정안 즉각 공개하고, 밀실 정치거래 중단하라"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합의처리 시한을 넘긴 채 여야 원내대표 협상에서도 합의안 마련에 실패했다. 여야는 29일 본회의 직전에 다시 만나 최종 담판을 짓겠다고 했으나 내용에서 전혀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혀 최종 결렬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은 절차대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민주당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일방처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언론계는 본회의처리 중단을 촉구하면서 법안 통과시 언론을 겁박하는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7일부터 28일 오후 5시까지 5차례에 걸친 회동을 통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단일안 마련 협상을 벌였으나 양측의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고 밝혔다. 양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6시경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 회의를 마치고 나와 이같이 밝혔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브리핑에서 “아직도 충분하게 합의에 이르지 못해 각자의 의견과, 각 상대당의 의견을 들은 다음 내일 11시30분에 만나서 얘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호중 원내대표도 “오늘 의총 분위기나 논의된 것들을 서로 교환했고, 아직 내용에 있어서 언론중재법의 내용에 있어서나 처리방안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어 합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내일 만나면 좀더 진전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 원내대표는 “양측 입장이 평행선이라고 봐야죠”라고 답했다.
윤 원내대표는 '내용합의가 계속 이뤄지지 않는다면 협상은 안되는 것 아닌가', '그럼 일방처리 하든지, 법안을 보류하든지 둘중 하나 아니냐'는 미디어오늘 기자 질의에 “어느 쪽으로 갈지 결론은 안낸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최종결렬이냐고 묻자 “오늘 결렬이 최종결렬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도 “우리가 정말 그야말로 '아이를 살리려는 어머니의 지혜로 발휘해보자'며 도저히 양보하기 어려운 안까지도 제시해봤으나 그 조차도 수용되지 않고 있다”며 “협상을 계속 하겠으나 내용에 대한 합의는 현 단계, 현 시점에서는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혀 최종 결렬 가능성을 내비쳐왔다.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가짜뉴스 피해구제법 처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데에 민주당 의원들의 이견이 없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29일) 절차대로 진행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29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허위조작보도' 정의 조항 삭제,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 조항 삭제,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 한도를 3배로 조정하는 수정사항을 반영한 수정안을 발의한 후 상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기존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한 원안을 수정없이 안건으로 상정할 가능성을 두고 윤호중 원내대표는 “원안으로 처리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7일 내놓은 '언론중재법 8인 협의체 민주당 대안 주요내용' 자료에서 △'허위조작 보도' 정의 규정 삭제 △기사 열람차단청구권 대상 축소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규정 삭제 △징벌배상 규모의 경우 손해액의 5배 이하 배상으로 돼 있는 현 개정안(1안)과 '5000만원 또는 3배 이내중 높은 금액으로 배상'하도록 한 안(2안)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수정안 원문을 공개한 적은 없다. 실제로 허위조작보도 정의 대신 어떻게 수정했는지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이 대목을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민주당이 당시 내놓은 안은 허위조작보도 대신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로 표현을 바꾸었다.
국민의힘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개정안 30조의2)와 열람차단청구권(개정안 17조의2)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 23일 자신들이 내놓은 안을 두고 손해배상과 관련,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 '재산상 손해'와 '인격권 침해 또는 정신적 고통'을 구분하고, 손해배상 산정시 정정보도 여부 및 이행 시기 등 여러 요인을 감안해서 실질적인 손해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민주당 수정안 중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을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보도'에서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로 범위를 넓힌 것을 두고 “입증 책임을 전면적으로 언론사에 전환하고 있다”며 “'진실하지 않은 보도' 역시 '허위보도'와는 엄연히 다른 것으로, 허위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한 보도 또한 '진실하지 않은 보도'에 포함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수정안은 기존안보다 더 개악적이고 위헌적인 수정안이며 양당의 간극을 더 넓힌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협상 내내 이 같은 주장을 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당 역시 징벌적 손배제와 열람차단청구권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해 언론피해구제 방안을 마련하는 핵심 사안이어서 물러설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여야는 지난달 31일 언론중재법 8인협의체를 통해 단일안을 만드는데 협의하기로 했으나 이 역시 합의하는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29일 여야 회동이 최종결렬돼 본회의 강행처리될 경우 지난 7월부터 민주당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밀어붙이기 시작한 언론중재법 논란은 야당 뿐 아니라 언론계, 시민사회, 심지어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약 3개월만에 민주당의 일방처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국민의힘은 언론 분야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입장이어서 29일 민주당의 본회의 처리 강행시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나온다.
언론현업인단체와 시민단체는 법안 처리 움직임에 반발했다. 징벌적 손배제에 반대해온 오픈넷은 28일 내놓은 성명에서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등 국제인권기구들의 우려의 핵심은 언론행위만을 다른 불법행위보다 더욱 엄격하고 특수하게 다루고, 비례성에 어긋나는 과도한 책임을 부과시키는 것 자체가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데 있다”며 “별도 위법행위 입증 없이 '허위'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에 법적 책임을 부과하려는 부분도 확립된 국제인권기준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오픈넷은 “민주당이 법안을 강행할시 반민주적 입법을 자행했다는 국제·시민사회의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졸속으로 수정된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의지를 버리고 법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 5단체도 이날 성명을 내어 “민주당과 국민의힘에게 밀실 논의 및 법안 처리 절차 중단과 동시에 두 정당이 내놓은 협상안이 포함된 언론중재법 개정안 전문을 공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지금의 밀실 협상은 몇 개월을 끌어온 시민사회, 언론현업단체, 법조계 및 학계의 논의를 무시하고 스스로 내세웠던 입법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정치적 거래”라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민주당은 본회의 상정 계획을 철회하고 전면적인 언론보도 피해구제와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대안을 만들 사회적 합의 기구 구성을 선언하라”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이 지난 17일 제안한 언론중재법 수정안(대안) 원문을 왜 아직 공개하지 않느냐는 미디어오늘 기자 질의에 윤호중 원내대표는 28일 “협상이 계속되기 때문에 8인협의체 제안했던 수정의견, 여러 가지를 의총에서 최종결정하기 전까지 공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28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언론관련법이 이런 식으로 논의돼서야 되겠느냐”며 “(명예훼손제 등) 언론 법률과 표현의 자유 규제를 한 테이블에 모아놓고 총론적으로 논의해야 함에도 이런 논의 총체적 구성없이 아무런 맥락없는 낙서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위원장은 법안 강행시 언론환경을 두고 “탐사보도의 위축과 자기검열이 강화가 생기며 언론자유지수 하락 및 봉쇄소송의 증가 현상이 나타나 결국 언론의 활동 자체가 둔화될 것”이라며 “사회감시 시스템, 즉 부패감시의 축이 무너지는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에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것이 올바른 방향인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며 “권력에 의해서 다시 언론이 겁박 당하는 그런 시절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이 같은 결정을 한 배경을 두고 윤 위원장은 “피해구제 여부 보다 무슨 조항을 빼고 뭘 넣으면 지지자들이 어떻게 반응한다는 것이 법률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고려사항이지 않았겠느냐”며 “결국 언론을 망치는 법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법안이 지지자들을 위한 법률이냐”며 “이 대가를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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