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박형준의 내 인생의 책 ③]
[경향신문]
10년 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1년)>를 펼치면서 마치 미드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인류의 역사를 구슬 목걸이를 엮어가듯 술술 풀어가는 그의 통찰력과 이야기 능력에 감탄을 거듭했다. 별 볼일 없던 동물이었던 사피엔스가 언어를 매개로 다른 동물과 다른 인지 능력을 획득하고, 그 덕분에 협력 능력을 얻고, 사회와 국가 나아가 제국까지 만들어 만물의 영장이 되는 과정을 이처럼 생생하게 구성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 사실 인간이 뭉치고 싸우고 거대한 발전의 드라마를 쓸 수 있었던 이유가 인지혁명 덕분이다. 그 인지혁명으로 ‘스토리텔링’이라는 거짓말(?) 능력이 인간에게 생겼다.
힘이 더 셌던 네안데르탈인을 물리치고 사피엔스가 인간의 지배종이 된 것도 이 언어 능력에 기초한 협력 능력 때문이었다. 이 스토리텔링을 통한 서사와 담론이 역사를 지배했고, 종교, 이데올로기, 과학, 국가, 전쟁 등 문명의 주인공들이 생겨났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들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 창조된 것이다. 온갖 전쟁과 갈등도 모두 이 말씀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사피엔스는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이다. 7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제 앞가림도 못하던 인간이 지금 지구의 주인 노릇과 더불어 지구 생태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더 나아가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도움으로 컴퓨터 덩어리에 마음을 넣는 것이 가능해졌고, 신만이 누리던 특권이었던 ‘영원한 젊음’과 ‘전지전능’에 도전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을 다루는 것이 속편 <호모 데우스>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총량은 줄지 않았고, 미래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근현대를 이끌었던 이데올로기도 이미 색이 바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어떤 게임을 할 것인가가 증요해졌다. 마침 <오징어 게임>이 넷플리스 시청률 세계 1위란다.
박형준 | 부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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