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강제징용 첫 자산매각 명령, 이제 일본이 나서야
[경향신문]
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압류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과 특허권에 대한 매각명령을 결정했다. 대전지법은 27일 강제징용 피해자 2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과 특허권 특별 현금화 명령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의 자산 매각을 명령한 것은 처음이다. 미쓰비시 측이 즉각 항고 방침을 밝혀 당장 상표권과 특허권을 매각해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이번 판결은 지난 10일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자산압류 조치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이후 이를 적용한 첫 하급법원 사례다.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비롯한 다른 전범기업들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철의 경우 지난해 12월9일부터 한국 내 자산인 피앤알(PNR) 주식 매각명령에 대한 심문서 공시송달 효력이 발생한 상태다. 법원이 언제든 PNR 주식을 강제 매각해 현금화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유사한 후속 판결이 잇따른다면 경색된 한·일관계의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 정부는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를 초치하고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등 불만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국 기업의 자산 매각을 한·일관계의 마지노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2018년 10월과 11월 잇따라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에 대한 강제징용 손해배상 확정 판결을 내린 후 한·일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비롯한 각종 경제 보복 조치로 일관했다. 지난해 개최 예정이던 한·중·일 정상회담은 아직까지 열리지 못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현금화 방지 약속’을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미쓰비시의 자산 매각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한 진전은 있을 수 없다.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 범위에 대한 법적 다툼이 있음을 일본 정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양국 관계의 파국을 막으려면 일본이 나서야 한다. 추가 보복 조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은 29일 자민당 총재에 이어 다음달 4일 차기 총리를 선출한다. 차기 일본 총리가 한·일관계 회복을 위한 물꼬를 터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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