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내년 시행] '적정한' '필요한' 모호한 조항 많은데 산업계 구체화 요청은 묵살

박정일 입력 2021. 9. 28. 19:32 수정 2021. 9. 28. 19: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제단체들 강한 유감 표명
"시행 4개월 남짓 앞둔 상황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기업들 '엑소더스' 현실화 우려
<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정부가 모호한 규정을 구체화 해달라는 산업계의 요청을 묵살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강행처리하자 재계가 강하게 반발했다.

기업규제 3법과 개정 노조법에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부터 시행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해외 '엑소더스(탈출)'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28일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통과시키자 일제히 논평을 내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논평에서 "안전보건의무, 관계법령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기업들은 법을 어떻게 준수해 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며 "시행을 4개월 남짓 앞둔 상황에서 정부는 하루빨리 명확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총에 따르면 이번에 통과한 시행령 제정안에는 재계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경영계는 직업성 질병자 중증도 기준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일시적으로 다량의 노출' 등 일부 문구를 정비하는 수준에 그쳤다.

아울러 제 3조 내 주유소와 충전소의 공중이용시설 적용대상 기준 재설정 요청도, 안전·보건 관계 법령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달라는 요청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기업규모별 유예기간 부여, 경영책임자의 구체적 정의, 도급·용역·위탁 시 안전·보간 확보 의무의 구체적 규정, 경영책임자 등의 책임범위 면책규정 신설 등의 요청도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 '적정한', '충실하게' 등 불명확하고 모호한 문언 삭제와 기존 법률과 상충되는 부분에 대한 수정 요청에 대해서는 일부 반영되긴 했지만, 모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예를 들어 '적정한 예산'이라는 문언은 '재해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의 구비'와 '유해·위험요인의 개선에 필요한 예산'으로 수정됐는데, 이 역시 '필요한'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등의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 역시 진작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에 대해 경제단체들과 마찬가지의 지적을 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김용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예를 들어 자동차 브레이크 결함으로 시민재해가 발생했다면 실질적인 과실 여부에 따라 자동차 제조사와 브레이크 제조사 등이 모두 처벌될 수 있다"며, 수사주체의 경우도 전문가인 근로감독관이 아니라 경찰로 규정돼 있어 향후 관련 법적 분쟁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중대재해, 경영책임자 등의 개념이 광범위하고, 위험방지 의무 범위도 모호하다"며 "경영책임자 및 법인 처벌규정은 이 법안의 핵심내용인데, 대단히 무거운 형벌로 일관하고 있어서 오히려 적용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전체적으로 안전원리, 법 원칙과 부합하지 않고, 재해예방의 실효성, 현장작동성과도 거리가 있다"며 "비교법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보편성과 체계성이 결여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산업안전보건법의 '옥상옥(지붕 위에 또 지붕)' 격인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시행될 경우 국내 제조업체들의 해외 이전 움직임이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전경련은 올해 내놓은 '중대재해법이 초래할 수 있는 5가지 문제점' 보고서에서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 , 개정 노조법이 통과된 가운데 중대재해법마저 제정될 경우 국내기업 환경은 최악으로 치닫아 생산기지 해외이전 유인 증가와 외국기업들의 국내투자 기피도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이어 "국내 산업의 공동화는 물론 기업 엑소더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또 기업 CEO(최고경영자)가 직원들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까지 막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로 인해 경영활동 자체가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올 초 중기중앙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산업재해 사고 발생의 주된 원인으로는 '근로자 부주의 등 지침 미준수(75.6%)'가 가장 많이 꼽혔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