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칼럼] 2022년 선거의 해, 그리고 지역감정
박태균ㅣ서울대 국제대학원장지난 50년간 한국 정치를 괴롭힌 고질병이 있다. 지역감정이다. 1971년 대통령선거로부터 시작된 지역감정은 지금까지도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한테 특정 지역의 표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거 때마다 후보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느 정당으로 출마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곤 했다.
지역감정이 독재정부 시기에 이뤄진 불균형적인 개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지역감정에서 비롯한 지역별 표 쏠림 현상이 민주화 이후 더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전의 투표 성향은 주로 여촌야도의 흐름이었다. 정부의 동원 조직이 강하게 작동하던 지역에서는 여당이 많이 득표했지만, 도시에서는 주로 반독재 민주화의 기치를 든 야당이 더 많은 표를 얻었다.
민주화 이후 여촌야도 대신 지역감정에 근거한 투표가 자리잡았다. 1987년 대통령 선거와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는 그 출발점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세 후보가 25% 이상을 득표했고, 당선인의 득표율이 36.4%밖에 되지 않았다. 총선 결과 네 지역에 근거를 둔 거대 정당 네개가 만들어졌다. 1여 3야, 거대 야당이라는 한국 정치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타났다.
위기를 느낀 여당은 제3당, 제4당과 합당했고, 이는 거대 보수여당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과반수에도 미치지 못했던 여당은 3당 합당을 통해 개헌 가능 의석수 이상을 확보한 거대 정당이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정치권은 냉전독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구도에서 보수 대 진보의 구도로 재편되었지만, 지역감정에 기초한 정치 구도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그 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역감정에 기초한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계속되면서 한국 정치에서 정책이나 인물은 더 이상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어느 지역에 근거를 둔 정당인지, 어느 정당 소속 후보인지가 선거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물론 대통령 후보를 뽑을 때에도 소속 정당과 출신 지역이 후보의 자질보다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었다. 특정 지역에 기반한 정당 소속 정치인이나 특정 지역 출신의 정치인만 선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합리한 상황이 나타났다. 특정 지역의 인구수가 대통령 후보를 결정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정책이 실종되다 보니, 정치인들의 자질은 선거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고 있다. 특정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 출신이면 선거운동이 필요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치활동의 경험이 전혀 없던 인물도 정당의 추천만 받으면 해당 지역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해도 얼마든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보수 대 진보의 정치 구도는 정책 정당의 발전과 실력 있는 정치인들의 등장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 수립 이후 시민의 힘으로 네 차례에 걸쳐 정권을 바꾼 경험을 갖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방역에 성공한 덕분에 다른 나라들과 달리 개방적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지만, 막상 정치체제는 다른 국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민운동에서부터 기초자치단체, 지방정부, 지방의회를 거쳐 수십년간의 정치활동을 통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다른 국가들의 사례와 달리 한국은 아직도 30년이 넘도록 지역감정에 기반한 구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2년에는 대통령선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선거도 있다. 모든 사회적 관심이 대통령선거에만 몰려 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관심이 대통령선거에 집중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시작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지만, 지금까지 역대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60%를 밑돌고 있다.
지역을 생각하고 정치적 훈련을 받기 위해서는 기초 단위에서부터 일하고 훈련받은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각 지역이 처해 있는 현실을 이해하고 있고, 기초자치단체에서 시작해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그리고 국회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정치적 훈련을 받은 정치인들을 길러내야 한다. 중국에서는 대사로 나가려면 지방정부의 대외협력 관련 부처에서 2년간 근무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지방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국외에서 중국을 대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2022년은 지역감정에 근거한 한국의 정치 구도를 끊어내는 첫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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