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典에 충실한 리어왕, 필생의 마지막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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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분장 등 원전 최대한 살려
예술감독도 맡아 대사 전달 주력
3시간 분량 全 회차 '원 캐스트'
"제대로 준비해서 끝까지 완주할것"
“이것 말고는 길이 없습니다. 시작한 거 끝을 보겠습니다.” 정치인을 꿈꿨던 철학도는 대학 졸업 후 방송 관련 회사에 다니다 1년도 안 돼 그만두고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예술가’는 고사하고 ‘딴따라’ ‘광대’ 소리 듣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불안한 일이었다. 묽은 수프로 끼니를 때우며 힘겹게 무대에 오르던 시절, 고향에서 찾아온 아버지는 아들의 강한 의지에 용돈 봉투와 함께 짧은 말 한마디 남기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류가 되면 밥은 먹고 살겠지.” ‘이것뿐’이라던 단 하나의 길을 걷는 동안 강산은 여섯 번도 더 바뀌었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그러나 명연기로 빛난 여정의 주인공은 배우 이순재(사진)다. 올해로 연기 인생 65주년을 맞아 오는 10월 최고령(88세) 리어왕에 도전한다.
이순재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이순재의 리어왕’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이번 공연은 셰익스피어 리어왕을 원형 풀버전으로 선보이는 흔치 않은 기회”라며 “내 나이에 만용이란 생각도 들지만, 필생의 작품이란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연극은 서울대학교 극예술동문 중심으로 창단된 극단 관악극회에서 대배우를 기리기 위해 준비한 프로젝트로 예술의전당이 공동 주최한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은 인간 존재와 인생의 근본적인 성찰과 함께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유명하다. 행복한 은퇴를 꿈꾸던 왕이 경험하는 비극과 처절한 삶의 여정을 통해 진실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순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절대 권력자인 왕에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리어왕 역을 맡았다.
그동안 국내에서 선보여온 리어왕은 원작을 줄여 각색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번 ‘이순재의 리어왕’은 텍스트부터 의상, 분장 등 원전을 최대한 살려 3시간 버전으로 펼쳐낸다. 이순재는 원 캐스트로 23회 전 회차를 소화한다. 65년 내공의 배우에게도 이번 작업은 부담이 크다. 그는 “대본에 충실해 반복해서 연습하고 또 하는 수밖에 없다”며 “자기 전에 눈 감고 한두 번씩 대사를 외워 보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제대로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보약 준비해달라고도 했다”고 웃어 보였다. 현재 공연팀은 매일 오후 2~10시까지 8시간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타이틀 롤만으로도 힘든 작업에서 그는 예술감독도 함께 맡는다. 주연 배우로서 캐릭터의 다양한 감정과 인물의 내면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한편 예술감독으로서 배우 전원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관객에게 전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순재는 “지나치게 전문성에 치우쳐 관객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연극적 행위라고 할 수 없다”며 “말의 언어 구사가 정말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문학적 수식이 많기에 원전을 그대로 구현하려는 이번 공연에서는 대사를 제대로 소화해 전달하는 배우의 역량이 더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간담회 중 이순재의 입에선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란 표현이 몇 번이나 나왔다. 고전을 원전 그대로 다루는 작품이 많지 않고, 그런 작품에서 자기에게 맞는 배역을 만나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다. 그는 “고전은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 역량을 다 뽑아도 제대로 될까 말까”라며 “이후 또 다른 연극을 할 기회는 있겠지만, 이런 작품과 역할이 또 오겠느냐”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선배’의 의미 있는 무대엔 서울대 관악극회 배우들뿐만 아니라 평소 그를 존경해 온 후배 배우들이 함께한다. 리어의 세 딸 중 첫째 딸인 ‘고너릴’ 역은 배우 소유진·지주연이 맡았으며 둘째 딸인 ‘리건’은 오정연·서송희가 연기한다. 셋째 딸인 ‘코딜리아’ 역엔 배우 이연희가 캐스팅됐다. 그는 첫 연극인 이번 작품에서 ‘바보 광대’ 역할도 함께 하는 특별한 코딜리아를 선보인다. 연출과 번역은 국내외의 대표적인 셰익스피어 학술단체 임원을 지내고 셰익스피어 작품의 번역, 연출, 드라마트루그로 활약해온 이현우 순천향대 교수가 맡았다.
3시간의 러닝타임과 전 회차 원캐스트. 젊은 배우도 쉽지 않을 일정을 앞두고 대배우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먹은 사람이 건강을 장담하긴 어렵지만, 일단 판을 벌여 놓으면 현장에서 신이 나서 일하게 되거든요. 잘 관리해서 제대로 완주할겁니다.” 10월 30일~11월 21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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