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리어왕' 이순재 "리더십은 군림 아닌 밑바닥 이해하는 것"

이향휘 2021. 9. 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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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인생 65년' 국민배우 이순재
다음달 말 개막 연극 '리어왕' 주연
"필생의 마지막 작품..모든것 쏟겠다"
소유진·이연희 등 배우들 참여
`국민 배우` 이순재가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다음달 개막하는 연극 `리어왕`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영국 스타투데이 기자]
"리어가 이리 걷고 말하나? 두 눈은 어디 갔어? 지능이 줄었거나 분별력이 마비됐어. 하! 자는 거야? 깬 거야? 분명코 그건 아냐.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것을 소유한 절대 권력자에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미치광이 팔순 노인으로 전락하는 내용의 셰익스피어 연극 '리어왕'이다. 가장 완성도 높은 비극으로 꼽히는 이 고전을 '88세 국민배우' 이순재가 처음으로 연기한다. 공연 역사상 리어왕을 연기하는 최고령 배우다. 러닝타임 200분. 3시간 무대를 오롯이 이끌어야 한다.

이순재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이런 역할이 또 오겠는가"라며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작품이지 않느냐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며 각오를 다졌다. 지난 65년 연기 인생에서 무려 350편의 작품에 출연했던 그다. 리어왕은 다음달 3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해 11월 21일까지 열린다. 23회차 공연 모두 리어왕 역할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구사입니다. 말을 정확하게 해야 인물의 신분과 지적 상황이 표현돼요. 한 사람 대사가 한장씩 넘어가는 것도 많아요."

그는 "입에서 대사가 녹아나야 한다"며 "자다가도 대사가 튀어나와야 한다. 자기 전 눈감고도 한대목씩 해본다"고 말했다.

국민배우 이순재가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 기자간담회에서 활짝 웃고 있다. [강영국 스타투데이 기자]
장장 3500행 되는 대작을 외우는 것은 아흔을 바라보는 그의 나이에 엄청난 도전이다.

"집사람 보고 보약 좀 준비하라고 했어요. 끝까지 완주해야지 중간에 잘못되면 큰일난다고. 연습밖에 없지요. 매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8시간 연습하고 있어요."

대사와 의상, 분장 모두 셰익스피어 원전을 고스란히 살리는 데 초점을 뒀다.

"이 연극은 절대 권력자가 자기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땅을 분할했다가 결국 딸들에게 쫓겨나고 버림받게 되는 내용이죠. 최상에서 최하로 떨어지는 비극성을 주장하는 겁니다."

이 엄청난 추락에서 불현듯 깨달음은 온다. "리어가 폭풍우를 얻어맞으며 이런 대사를 읊어요. '아 가난하고 벌거벗은 자들이여. 이 모진 폭풍을 어떻게 견뎌왔는가. 너무 이해하지 못했구나'. 결국 통치자의 모순을 자탄하는 것이죠."

리어왕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이와 같다.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안고 가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 아니냐. 리더십은 군림하는 게 아니고 밑바닥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리어왕이 느낀 회한도 그런 것이죠."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집필했을 때도 흑사병이 창궐해 격리된 상태였다. 연출을 맡은 이현우 순천향대 교수는 "리어왕엔 유난히 전염병 관련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며 "지금과 마찬가지로 하층민의 피해가 더 컸을테고 귀족 출신이 아닌 셰익스피어는 이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극을 썼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순재와 함께 무대에 서는 25명의 배우 중엔 소유진이 첫째딸 '고너릴'을 맡고, 이연희가 셋째딸 '코딜리아' 역으로 데뷔 17년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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