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투자 어려워지니.. 재건축 상가에 부는 위험한 '바람'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낡은 상가, 이른바 ‘썩상(썩은 상가)’ 투자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재건축이 되면 단지 내 상가를 주택으로 바꿔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투자인 데도 세금 규제가 심한 탓에 자금이 흘러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부동산 자문센터 관계자들은 “수년 전에는 할 만했던 투자지만 최근엔 과열 양상이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 없어서 못 판다는 노후상가 몸값 급등
대표적인 곳이 1988년 6월 준공된 올림픽선수기자촌 상가다. 28일 국토교통부 상업·업무용 실거래가 조회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전용면적 5.28㎡짜리 상가가 6억8500만원에 거래되며 3.3㎡당 4억2800만원을 기록하더니 7월에 거래된 5.25㎡짜리 상가는 8억원에 매매됐다. 3.3㎡당 5억원 꼴로 매매된 셈이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상계주공3단지 상가 상황도 비슷하다. 지하 1층 상가의 3.3㎡ 당 가격은 5000만원 수준. 2년 전 가격보다 2.5배 가량 올랐다. 이마저도 매물이 없어서 거래를 못하는 정도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노후상가 매맷값을 보면서 ‘상전벽해, 격세지감’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후상가는 한 때 시장에서 잊혀진 상품이었다. 시설이 낡았고 공실율도 높은 만큼 월세도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길가 점포들의 상황은 좀 낫지만, 상가 안 쪽은 통상 창고로 임대차 계약이 맺어지면 다행인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어쩌다 매매가 성사되면 “매도자가 잘 판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귀한 몸값이 된 걸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크게 네 가지 이유를 꼽았다.
① 새 집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상가 몸값이 높아진 가장 큰 이유는 재건축이 진행되면 상가 대신 새 집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재건축 사업을 빨리 진행하기 위해 조합이 상가 조합원을 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분위기로 가는 것이 요즘 추세다. 지금까지 상가 조합원과 조합이 감정평가액을 두고 갈등을 겪으며 사업이 지체됐던 것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견이 많아진 것이다.
서울 서초구의 신반포2차 조합이 대표적이다. 이 조합은 지난해 10월 상가 조합원도 상가 대신 아파트를 받을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했다. 산정 비율을 통상적인 수치 ‘1.0′에서 ‘0.1′로 대폭 낮춘 것이다.
‘산정 비율’은 상가 조합원이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숫자다. 분양주택의 최소 분양가에 ‘산정 비율’을 곱한 값보다 상가 조합원의 권리차액(상가 조합원 신규 분양가-종전 재산가액)이 커야 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다. 산정 비율이 낮아지면 낮아질 수록 상가 조합원이 주택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② 세금·대출 등 규제에 목돈이 주택 대신 노후 상가로 선회
각종 규제에 따라 주택에 더 이상 자금을 투자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도 노후 상가의 몸값이 자꾸 오르는 이유다. 정부는 6·17 대책에서 취득세와 보유세, 양도세를 모두 올리는 초강수를 내놨다.
보유세를 몇 년 부담하게 되면 최근 2~3년간 오른 시세 평가차익을 모두 토해내는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에 주택 구매를 단념한 이들이 상가로 눈을 돌린 것이다.
③ “시간 걸려도 상관없다…자녀 증여용”
자녀 증여용으로 찾는 이들도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지라도 묵혀 두면 ‘보석’이 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과거엔 자녀를 위해 노후 주택을 사놓고 시간이 흘러 재건축·재개발이 되면 새 집을 받아 자녀를 시집·장가 보냈다면, 최근엔 노후 상가를 택한다는 것이다. 노후 상가를 선택할 때 이점은 재산세 부담이 주택보다 높지 않다는 점, 1가구 2주택으로 분류되거나 이를 막기 위해 분리세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 등이다.
서울 노원구의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엔 지자체에서 세대분리 신청도 쉽게 받아주지 않을 뿐더러 미성년자에게 집을 사주면 자금 증빙 문제, 매년 내야 하는 세금 문제, 증여 문제 등 복잡한 일이 많은데, 상가의 경우 주택을 사는 것보단 좀 더 용이하다”면서 “자녀 증여용인만큼 장기적으로 보고 상가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다.
④ 상황 여의치 않으면 따로 개발도 가능
여러 이유로 아파트 단지와 함께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입지가 좋다면 독자적으로 개발사업에 나설 수도 있다. 개포래미안포레스트로 재건축 된 개포 시영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이 곳은 감정평가액을 두고 상가 조합원과 아파트 조합원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따로 사업을 추진했다. 상가 조합원들은 기존 상가 자리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었다. 지하 4층, 지상 10층, 근린생활시설 68실, 아파트 28가구로 재건축해 조합원 60명이 근린생활시설을 갖고 나머지는 일반분양을 했다. 개포동 인근 J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입지만 좋으면 상가 건물만 따로 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했다.
◇ “노후상가, 재건축 아파트보다 훨씬 위험한 투자군”
하지만 노후 상가에 투자하는 것은 대표적인 고위험군 투자로 꼽히는 재건축 아파트 투자보다도 한 단계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조합 정관에 따라, 혹은 조합 집행부가 어떤 방식으로 논의를 이끌어 가는 지에 따라 주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은 상가 조합원도 함께 끌고 가는 분위기지만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바뀌고 감정평가액에 변동이 있으면 다른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현재 조합정관의 산정 비율을 확인하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지만, 조합 정관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현재 산정 비율을 확인하고 투자하는 것이 의미없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상가 조합원의 재건축 초과이익을 어떻게 산정할 지에 대한 논의도 아직 진행된 바가 없다. 현행 재초환법에는 단지 내 상가 재산을 제대로 평가하고 부담금 징수에 반영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법은 주택만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주택은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는 날을 기준으로 주택 가격을 산정하기 시작하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액을 계산하는데, 상가는 0원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상가 조합원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금이 주택을 가진 조합원보다 늘어날 수 있다.
이미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점도 부동산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재건축 아파트 단지 내에 상가를 투자하면 상가를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집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에는 노후 상가의 값이 이렇게 비싸지 않았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 전문위원은 “상가 투자의 이점을 잘 모르던 시절엔 아주 좋은 투자처였지만 최근엔 너무 과열돼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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