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업무는 처음이라.. 모호한 기준에 더 힘든 담당자

이정하 입력 2021. 9. 28. 05:06 수정 2021. 9. 2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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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턱없이 부족한데, 야간·공휴일 출동 부지기수
"정부, 현실적인 출동 지침과 학대 판단 기준 마련해야"
정치하는엄마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등 4개 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5월20일 국회 앞에서 ‘청주 중학생 동반사망 사건 진상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아동학대 진상조사 특별법의 필요성과 아동학대 진상조사 특별법 통과 촉구 발언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민간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수행하던 아동학대 조사 업무를 다음달부터는 시·군·구청 공무원이 맡게 된다. 이런 ‘아동학대조사 공공화’ 정책은 인천 지역에서 6개월 먼저 시행돼, 지난 2일과 6일 인천시 부평구청 아동보호팀과 함께하면서 실제 업무와 활동을 살펴봤다. 새로운 업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지만 인력은 부족했고, 민감한 가정사·사생활과 관련된 아동인권 업무가 주는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어 힘들다는 반응이 많았다. 업무 특성상 취재 내용을 상세하게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조사자는 팀 업무 총괄인 김윤희 팀장으로 일원화했다.

9월2일 오후 3시 인천시 부평구청 아동보호팀 사무실. 경찰의 동행출동을 알리는 전화 한통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전담공무원 2명과 김윤희 팀장이 서류 등 가방을 챙겨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이들이 방문할 곳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온 한 가정이었다. 전날 부평구 한 동주민센터에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9살 어린이가 치과 진료를 받고 갔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출동팀을 따라나서려 하자 김 팀장이 “여기까지”라며 동행취재에 선을 그었다. “민감한 개인 생활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장을 법에서 정한 이가 아닌 제3자가 동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출동팀은 퇴근 시간 무렵에야 복귀했다. “ㄱ씨는 9살 자녀와 친정에서 살고 있었다. 이 어린이는 초등학교 2학년 나이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고, 또래보다 많은 부분에서 발달이 늦은 것으로 보였다.” 김 팀장은 ㄱ씨 가족이 ‘그동안 출생신고를 몇번 시도했지만, 가족관계 등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담당 공무원은 ‘신체적·정서적 학대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교육적 방임 등에 대해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날 현장에는 조사를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등 위험도가 있다고 판단돼 경찰도 동행했다. 김 팀장은 “이 어린이의 호적 관계 정리와 경제적 지원을 위해 복귀하는 길에 동주민센터에 들러 복지팀에 사례 관리를 하도록 연계해주고 왔다”고 말했다.

현장 경험 쌓이지만, 학대 판단 고심도 깊어진다

4월1일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부평구 아동보호팀은 업무 시작 12일 만에 발생한 ‘모텔살이 생후 2개월 아동 학대 사건’으로 진땀을 뺐다. 밤 11시30분께 모텔 객실에서 아버지(27)가 생후 2개월 된 딸을 나무탁자에 집어 던져 머리 등을 심하게 다치게 한 사건으로, 아동보호팀 신설 이후 첫 야간 출동이 이뤄졌단다. 이튿날 새벽 1시 당직 전담공무원은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는 경찰 전화를 받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사건의 실체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경찰이 가해자인 아버지만 체포해 갔고, 19개월 된 피해아동의 오빠만 덩그러니 남겨졌단다. 피해아동의 어머니는 사건 발생 일주일 전 사기 혐의로 수감돼 이들 곁에 없었다.

김 팀장은 “큰아이를 임시로 맡아줄 보호시설 찾고, 인계하는 데 꼬박 8시간이 걸렸다”며 “보호시설에 입소하려면 코로나19 검사와 건강검사를 받아야 한다. 보호자가 없는 상태다 보니 피해아동의 수술과 입원 등의 서류 등을 대리 작성하는 것도 우리 몫이었다. 또 세간의 주목을 받게 돼 많이 당황했다”고 말했다.

6개월 가까이 현장조사 경험이 쌓이면서 업무는 익숙해졌지만 아동 분리, 친권 제한 등 강제력을 행사할 때 고심은 더욱 깊어졌다. 뚜렷한 신체적 학대가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면, 학대로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훈육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생활 여건 및 가족관계 등 변수도 다양하다.

“자녀 4명을 둔 어머니가 술에 취하면 첫째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해 가정폭력으로도 몇차례 경찰에 신고된 가정이었다. 법원에 가해 행위자인 엄마의 분리와 임시 접근금지를 요청했는데 기각됐다.”

김 팀장은 지난 6월 경찰에 수사의뢰한 아동학대 및 방임 신고 사건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후 아동보호팀은 팀원 전원이 모여 사례 판단 회의를 열고 토론을 거쳐 최종 학대 여부를 판단한다고 한다.

지원자 없는 전담공무원…불규칙한 생활

사회복지직 공무원에겐 아동보호팀이 기피 부서 ‘0순위’로 꼽힌다. 아동학대 조사 자체가 낯설고 어려운데다, 업무시간도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신고가 주야를 가리지 않는데다, 조사 일정과 장소도 학대 행위자나 피해아동 일정에 맞춰야 한다.

“일과 가정의 분리가 안 된다. 지난 6월 운전면허가 없는 한 팀원이 새벽 시간대 가족의 도움으로 현장에 갔다. 타고 간 개인 차를 이용해서 청소년을 임시쉼터로 인계하려는데, 이 청소년이 차에서 갑자기 문을 열고 도주하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사고가 없었지만,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가족들이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보건복지부는 연간 아동학대 의심 신고 50건당 전담공무원 1명 배치를 권고하지만, 현실은 이에 못 미치고 있다. 지난해 부평구 아동학대 의심 신고 건수는 500건을 넘겼지만, 전담공무원은 6명에 불과하다. 2인1조 3개 조로 운영하는데, 신고 사건 모두 출동하기에는 일손이 부족하다. 야간 출동이 많았던 한 직원은 최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병가 중이다. 올해 4~8월에는 아동학대 의심 신고 163건이 접수됐다. 한달 평균 32.6건으로, 전담공무원 1명당 한달에 5~6건을 조사하고 있는 셈이다. 163건 가운데 93건은 학대로 판단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이관했다.

이 기간 전화상담 건수는 1864건에 달했다. 이 외에도 피해아동 응급조치, 보호조치, 심리치료 등의 업무도 해야 한다. 김 팀장은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 건의 경우,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폐회로텔레비전(CCTV) 분석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두달 안에 사례 판단을 해야 하는데, 4월에 신고 접수 건 중 아직 못 끝낸 건도 있다. 조사가 길어지면, 학대 의심 행위자나 피해자, 종사자 모두 고통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행출동 당연하지만…현실 반영한 기준 마련해야

경찰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동행출동을 요청해 오지만, 전담공무원 실제 동행출동 횟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한달 평균 신고 건수 32.75건 가운데 5건가량이다.

김 팀장은 “동행출동을 요청할 때 구체적인 상황 설명 없이 ‘부부싸움 하는 것 같은데, 아이가 울고 있대요’, ‘가출 청소년인데, 청소년 쉼터로 보내달라고 한다’고 말하는데, 부족한 인력으로 전부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경찰과 일정 부분 동행출동 기준을 정하고,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담공무원 인력 부족은 인천 지역 다른 군·구도 다르지 않다. 인천시 전담공무원 배치 현황을 보면, 8월 말 기준 10개 군·구에 모두 44명이 배치됐다. 동구·강화군은 1명만 배치돼 2인1조 운영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인천 지역에선 3274건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인천시는 내년에 전담공무원 27명을 증원해달라고 복지부에 요청해둔 상태다. 시 관계자는 “인력 충원과 즉각 분리 증가에 따른 임시보호시설 확충도 필요하다”며 “현재 2곳의 보호시설이 올 연말이면 4곳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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