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뉴스 읽기] 탈원전 전력 손실이 30년간 1000조라고?

김정수 입력 2021. 9. 28. 05:06 수정 2021. 9. 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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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뉴스 읽기] <중앙일보> 보도·서일준 국민의힘 의원 주장
입법조사처 자료 보니 전제 부실에 왜곡까지
지난1월18일 경북 경주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모습. 연합뉴스

“`탈원전에 전력손실, 30년간 1000조' 국회 첫 계산서”

지난 24일 <중앙일보> 인터넷판이 ‘단독’이라며 내건 기사 제목이다. 같은 기사는 이날 아침 <중앙일보> 1면에는 “탈원전 손실 10년 뒤 177조…전기료 올렸다”라는 제목에 “입법조사처 탈원전 영향 첫 추산, ‘향후 30년간 발전비용 1067조 증가’”라는 부제가 달려 나갔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의 의뢰로 분석한 결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력생산비용 누적 손실이 10년 뒤엔 177조원, 30년 뒤엔 1067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 인터넷판에 실린 기사 제목은 서 의원실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 “‘탈원전 전력손실, 30년간 100조원’ 국회 첫 계산서”에 토씨만 하나 덧붙인 그대로다. 이 보도자료는 <중앙일보>에서 해당 기사가 나간 뒤 배포됐다.

서 의원실은 보도자료에서 “입법조사처는 재생에너지 가격을 kWh당 170원이라 가정했을 때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정책으로 인한 누적 손실이 5년 후 58조500억원, 10년 후 177조4300억원, 30년 뒤 1067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며 “천문학적 국부 손실과 전기료 폭탄을 예고한 ‘탈원전 고지서’가 국회 차원에서 공식 확인됐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 보도자료는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산업자원팀 입법조사관이 서 의원실의 요청으로 작성한 ‘에너지 전환에 따른 비용 발생’이라는 제목의 입법조사 회답 자료에 기초한 것이다. 서 의원실은 보도자료의 기초가 된 입법조사처의 회답 자료는 국정감사 때 공개하겠다며 언론에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한겨레>가 양이원영 의원(무소속)을 통해 같은 제목의 자료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서일준 의원실이 보도자료에서 주장한 ‘탈원전 전력손실 1000조원’은 입법조사처에서 작성한 자료를 왜곡한 수치로 확인됐다.

<한겨레>가 이 자료에 2021부터 2050년까지 연도별로 제시된 발전비용을 합산해보니, 서 의원실 자료대로 <중앙일보>가 보도한 ‘2050년까지 늘어난다는 발전비용 약 1067조원’은 탈원전만으로 인한 비용이 아니었다. 1067조는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진행하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발전비용 합계(2315조)에서 원전은 물론 석탄발전소까지 계속 돌리는 시나리오의 발전비용 합계(1248조)를 뺀 값이다. 즉, 탈석탄까지 포함한 탄소중립 비용을 모두 탈원전 비용으로 부풀렸다는 얘기다. 입법조사처가 작성한 자료에 탈원전만 고려한 연도별 발전비용도 따로 제시돼 있기 때문에 자료를 잘못 해석한 실수로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입법조사처 작성 <에너지 전환에 따른 비용 발생> 자료 일부. ‘최적 시스템’은 원전·석탄발전소, 엘엔지(LNG)발전소 건설을 모두 허용하는 시나리오, ‘탈원전 시스템’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원전을 폐기하는 시나리오, ‘탄소중립 시스템’은 원전과 석탄발전까지 폐기하는 시나리오임. 양이원영 의원실 제공

입법조사처 자료의 ‘총 전력생산 비용’ 표를 보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경우의 2021~2050년 총 발전비용은 1873조로 계산된다. 원전과 석탄 발전을 계속할 경우의 총 발전비용 1248조보다 625조 증가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625조를 탈원전 비용으로 보기도 어렵다. 입법조사처가 연도별로 제시한 모든 발전 비용은 한국전력의 재생에너지 전력 구입비를 ㎾h 당 170원으로 잡아 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전력 구입비가 지난해보다 ㎾h 당 15원가량 내려간 수준에서 향후 30년 동안 움직이지 않는다고 전제한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법조사처의 비용산정 방식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자료를 보면, 세계 태양광 발전의 균등화발전원가(LCOE) 평균은 2010년 ㎾h 당 37.83센트였으나 10년 만인 2019년에 5분의1 수준인 6.84센트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일부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이 화석에너지 발전비용과 같아지는 ‘그리드 패리티’가 나타나고 있고, 국내에서도 십여년 안에 비슷한 상황에 도달할 것이라는 연구기관들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추세와 전망을 고려하지 않은 채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이 원전과 석탄발전 비용보다 2~3배 높게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또한 원자력 발전 비용 계산에는 갈수록 늘어날 안전관리 비용,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포함한 사회적 비용이 고려되지 않았다.

게다가 서 의원실이 입법조사처 자료를 바탕으로 제시한 향후 10년간 177조원, 향후 30년간 1067조원 등의 누적 손실액은 경제성 평가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할인율마저 적용되지 않은 액수다. 지금의 1067조원과 30년 뒤의 1067조원 사이의 가치 차이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개인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미래에 예상되는 금액은 할인을 해서 현재가치로 환산해야 마땅한데, 그렇게 계산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런 할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10년 동안의 단순합으로 177조원이라는 수치가 나왔다면 그건 전혀 믿을 수 없는 수치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이와 관련해 27일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입법조사처 보고서의) 시나리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41.0%로 잡은 반면 화석연료인 엘엔지(LNG) 발전 비중을 51.4%로 잡은 것을 보면, 탄소중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라며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수준의 자료를 근거로 제1야당의 당 대표와 국회의원까지 나서는 걸 보니 국민의힘의 수준을 가늠케 한다”고 꼬집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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