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사민당, 16년만에 원내1당… ‘신호등 聯政’ 협상 돌입

베를린/손진석 특파원 2021. 9. 28.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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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 메르켈의 중도 우파를 1.6%p 차이로 꺾어
27일 총선 승리를 자축하는 올라프 숄츠/EPA 연합뉴스

26일(이하 현지 시각)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D·이하 사민당)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 여당인 기독민주당(CDU·이하 기민당)·기독사회당(CSU·이하 기사당) 연합을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이로써 사민당은 16년 만에 원내 1당으로 복귀, 정권 교체를 눈앞에 두게 됐다. 2005년부터 네 번의 총선을 내리 이겼던 기민·기사당 연합은 원내 2당으로 물러나 야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27일 독일 총선 개표 결과, 사민당은 25.7%를 득표해 24.1%를 얻은 기민·기사당 연합을 1.6%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의석은 사민당이 206석, 기민·기사당 연합이 196석을 얻었다. 사민당 총리 후보인 올라프 숄츠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변화를 바라는 많은 독일인이 정권 교체를 원했다”고 승리를 선언했다.

기민·기사당 연합은 두 당이 사실상 하나의 정당으로 공조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패배를 당했다. 2차 대전 이후 기민·기사당 연합의 득표율이 30%에 못 미친 건 처음이다. 의석이 200석에 미달한 것도 1953년 이후 실시된 19번의 총선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베를린 시장 당선인과 함께한 숄츠 총리후보 - 독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의 총리 후보인 올라프 숄츠 재무장관 겸 부총리(가운데)가 27일(현지 시각) 베를린 당사에 마련된 연단에서 손을 흔들며 총선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프란치스카 기파이(왼쪽) 베를린 시장 당선인과 마누엘라 슈베지히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지사도 기뻐하고 있다. SPD는 전날 실시된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AP 연합뉴스

독일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과 정당에 각각 투표하는 1인 2표제를 실시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지역구 299명과 비례대표 436명 등 모두 735명의 하원 의원을 선출했다. 양대 정당 다음으로 녹색당(득표율 14.8%·의석 118석)과 자유민주당(11.5%·92석), 독일을위한대안당(10.3%·83석), 좌파당(4.9%·39석) 순이었다.

차기 총리 1순위로 꼽히는 숄츠는 안정감 있는 리더로서 어필했다. ‘좌파 정당 내 우파 성향 인사’로 중도층 유권자들의 신뢰를 받았다. 그는 메르켈과 비슷한 면모를 가졌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언행이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편이다. 연설을 할 때 “로봇 같다”는 말도 듣는다. 메르켈과 마찬가지로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다. ‘정치 쇼’를 멀리하는 것도 메르켈과 비슷하다.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숄츠를 ‘메르켈 2.0′이라고 표현했다.

올해 63세 변호사인 숄츠는 4선 하원 의원, 노동부 장관, 함부르크 시장 등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았다. 2017년 총선 후 기민·기사당과 사민당이 연정을 꾸리면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됐다. 그는 코로나 사태 충격을 막기 위해 나라 곳간을 열었지만 “비상 상황이라 일시적으로 지출을 늘렸을 뿐 원래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파 정치인이지만 재정을 아끼는 모습에서 중도층이 그를 신뢰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숄츠는 최저임금 인상과 부유층 증세라는 좌파 정당 고유의 공약은 확실히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총선에서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수

숄츠와 대조적으로 기민·기사당의 총리 후보였던 아르민 라셰트 기민당 대표는 언행이 가볍다는 지적이 따라다녔다. 특히 지난 7월 대홍수 피해 현장에서 함박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달 공영방송 ARD 조사에서 라셰트에게 만족한다는 응답은 20%에 그쳐 56%였던 숄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라셰트뿐 아니라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국방장관, 옌스 슈판 보건장관을 비롯해 여러 인물을 ‘포스트 메르켈’로 띄워보려 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냉담했다.

숄츠는 녹색당⋅자유민주당과 함께 3자 연대로 이른바 ‘신호등 연정’을 추진하는 협상을 시작한다. 세 당을 상징하는 색깔이 빨강(사민당), 초록(녹색당), 노랑(자유민주당)의 신호등 색깔이라 붙은 이름이다. 사민당이 원내 1당이긴 해도 의석이 전체의 28%밖에 안 되기 때문에 녹색당과 뭉치는 것만으로는 과반을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자유민주당까지 끌어당겨야 한다. 협상은 난항이 예고돼 있다. 독일에서 3개 이상의 정당이 연정을 구성한 건 1953년 총선이 마지막이다. 김상국 베를린자유대 연구교수는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녹색당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중시해 규제 완화에 중점을 두는 자유민주당은 서로 상극”이라며 “연정 출범의 키를 쥐고 있는 두 당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신호등 연정 협상이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기민·기사당이 녹색당·자유민주당과 연대하는 연정이 등장할 수도 있다. 이 조합은 각 정당 상징 색이 자메이카 국기와 같기 때문에 ‘자메이카 연정’이라고 부른다. 기민·기사당은 정권 연장을 위해 파트너 정당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정국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연정 협상은 한두 달로는 부족하다. 숄츠 스스로 “크리스마스 이전에 마치는 게 목표”라고 했다. 2017년 총선 때도 연정 합의까지 4개월이 걸렸고, 정부 출범까지 다시 한 달가량 더 소요됐다. 독일 언론들은 메르켈이 정식으로 퇴임하는 시기가 내년 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번 총선은 유럽의 정치 지형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2017년 이후 유럽 3대국인 영국·독일·프랑스에서 모두 우파가 집권하고 있는데, 가장 큰 나라인 독일에서 좌파로의 정권 교체가 유력시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메르켈 총리가 맡아온 EU(유럽 연합) 내 리더 역할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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