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노”라고 말하는 장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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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쏠린 국회 입법독주 막을 최소한의 견제 장치 없어져
위기일수록 테크노크라트가 제 역할 해야
주요 행정 부처 장관들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고위 공무원과 대화하다가 사촌 격인 과기정통부 장관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여성 장관 아니냐”고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행정 부처 장관들이 존재감을 상실한 지 오래됐다. 비단 이 정부의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말도 맞는다. 하지만 이 정부는 유독 더한 것 같다. 정책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장관이나 미래 경쟁력을 걱정하는 장관은 이 정권 5년이 다 지나도록 본 적이 없다.
올해에만 전국 집값이 10% 가까이 올랐는데도 “집 사지 마라. 집값이 폭락한다”고 무주택자 염장 지르는 말만 하거나, “한국 코로나 방역이 세계적 모범”이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정권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하는 게 지금의 장관상(像)이다. 직선제 대통령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는데, 부처 장관의 독립성과 위상은 오히려 군사정권 때만도 못한 것 같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청와대와 여당 눈치 보기에 급급한 후배 공무원들을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삐끗하면 적폐에 직권남용으로 몰리고, 청와대에 찍혀서 옷 벗으면 산하 기관은 물론이고 민간 기업 취업길도 막혀버리는 현실이 큰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다.
행정 부처가 급격히 무력화되는 사이, 정파적일 수밖에 없는 국회의 권력 집중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대외 담당 임원으로 데려가는 사람들의 면면에서도 금방 드러난다. 관료 출신들은 찬밥 신세가 된 지 오래고, 주요 대기업 그룹에서 쿠팡·카카오 같은 빅테크 기업, 심지어 갓 출범한 스타트업에서도 선거 캠프나 의원 보좌관 출신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다. 구글·페이스북·애플 등 외국계 기업들도 정치권 출신들로 대외 담당 진용을 짤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아마추어 국회의 입법 독주다. 대표적인 예가 작년 7월 말 여당이 국회 법사위에 법안을 상정한 지 48시간 만에 시행에 들어간 임대차 3법이다. 통상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행정부로 넘어오면 2주 동안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법안을 심의한 뒤 관보에 게재해 효력이 발생하는데, 이 과정이 딱 하루 만에 끝났다. 부동산 정책 주무 부서인 국토교통부는 의견을 개진할 틈도 없었고 그런 노력도 안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유사한 법안에 대해 국토부가 ‘부작용이 더 크다’고 딱 부러지게 반대한 것과는 180도로 달랐다.
이뿐이 아니다. 국회는 선심성 퍼주기 법안 외에도 주 52시간 근무제, 양도세 감면을 위한 부동산 실거주 의무, 모든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 중대재해처벌법, 실현 가능성 제로인 탄소중립법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법안을 붕어빵 찍어내듯 쏟아내고 있다.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법안들이다. 심지어는 기업의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경영을 강제하는 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이 역시 정치권력이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구실로 변질할 우려가 크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임대차법 시행 후 전세값이 급등하면서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세입자는 이전보다 최소 50% 이상 가격을 올려줘야 한다. 집주인은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으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낡은 자기 소유 아파트로 이사해야 하고, 세입자는 졸지에 전셋집에서 쫓겨나고 있다. 또 탈원전을 하면서 앞으로 9년 만에 탄소 발생을 2018년보다 35% 이상 줄이자는, 꿈에서나 가능할 목표를 굳이 법으로 제정해 기업들을 옥죄는 이유를 모르겠다. 정부의 시나리오대로 재생에너지 비율을 현재의 7%에서 2050년 70%로 끌어올리려면 국토 전체를 태양광 패널로 깔아도 모자랄 판이다.
위기일수록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테크노크라트(정책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세계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예상보다 빨리 탈출한 데에도 벤 버냉키 전 FRB 의장 같은 테크노크라트의 공이 컸다. 지금 우리 경제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보다 크게 낫지 않다. 반도체·자동차 등 일부 기업 덕분에 위기가 가려져 있을 뿐이다. 이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특정 정파가 아닌 국민에게 충성하는 공직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직자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직권남용 규정이나 취업 제한 규정도 확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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