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공장 닫고 본토로.. 전기차 '자급자족 전쟁'

오로라 기자 2021. 9.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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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쇼크에 조립부터 배터리·부품까지 자체생산 나서

지난 21일(현지 시각) 인도 구자라트주 사난드시 외곽에 있는 포드 생산 공장에서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 수백 명이 “일자리를 빼앗지 말라”며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포드가 인도 생산 라인 2곳의 가동을 이르면 연말 중단하기로 결정하며 실직 위기에 빠진 사람들이다. 포드가 철수하면서 인도에서 사라지는 일자리 규모는 약 4000개. 타임스오브인디아는 “포드가 수익성이 낮은 해외 내연기관차 생산 라인을 구조 조정하며 전기차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포드는 인도 공장 철수와 달리, 미국 현지에선 전기차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지난 16일 포드는 미국 미시간주의 생산 공장 3곳에 2억5000만달러(약 3000억원)를 추가로 투자하고, 내년 초 출시 예정인 전기차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의 생산량을 기존 4만대에서 8만대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미국, 유럽 등 자동차 선진국들이 전기차와 배터리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면서 전기차 신규 투자를 자국에 집중하는 ‘로컬리즘(localism·지역주의)’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배터리, 반도체 등 주요 전기 부품 생산은 물론 조립까지 자국에서 해결하는 공급망 체계를 앞다퉈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국 중심 공급망 구축은 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 산업 주도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고, 이를 통해 대규모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드, 인도 생산라인 2곳 철수하고 美라인 증설 -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포드 루즈강 전기차 공장에서 내년 출시 예정인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의 시제품이 조립되고 있다. 최근 포드는 인도에 있던 내연기관차 생산 라인 2곳은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미시간 전기차 생산라인 증설에 나섰다. /포드

◇배터리 동맹·부품 자립… 뚜렷해진 지역주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4일 “전기차 배터리 관련 투자가 매우 정치적이고 지역주의적인 사안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공급을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내 기업들과 동맹체를 구성해 자체 생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르세데스 벤츠는 24일 스텔란티스그룹이 주도해 설립한 배터리 회사 ACC의 지분 33%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설립된 ACC는 프랑스와 독일 등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연간 전기차 200만대 분량의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 CATL이나 한국 배터리 회사들에 의존하던 배터리 공급을 유럽 내에서 대체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피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은 지난 2일 “ACC의 생산 라인 구축으로 유럽에 최소 2000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포드는 SK이노베이션, GM은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미국 내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했거나 증설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 기업들이 공장 건설 비용과 고임금 등으로 미국 내 공장을 기피해 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경제정책연구소 자료를 인용해 “2030년까지 정부가 전기차 생산을 내재화할 수 있다면 최대 15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에 흩어져 있는 자동차 업체들의 공급망을 미국 내에 모으는 것만으로 전기차 전환에 따른 실직을 막는 것은 물론, 대규모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도·중국도 로컬리즘 나서

자동차 선진국들의 로컬리즘은 글로벌 생산 기지 역할을 해온 인도·중국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인도 국가개혁위원회는 “인도는 전기차 부품 생산망을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중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인도는 전기차 부품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면서 조립 공장의 역할만 해왔다. 하지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하고, 내연차 중심의 기존 라인을 철수하면서 최근 5년 동안 인도 내 일자리가 6만5000개 사라졌다. 이 때문에 자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전기차 부품을 생산해야 자동차 산업의 기반을 지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굴기’에 나선 중국도 자국 기업과 일자리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자국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구매 보조금을 지원한다. 사실상 외국 배터리 업체의 중국 시장 진입을 막으면서 자국 생태계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선우명호 고려대 자동차융합학과 석좌교수는 “국내에서도 부산에 전기차 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일자리 창출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며 “하지만 로컬리즘이 확산하면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현지 공장을 짓고 현지에서 주요 부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환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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