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아름다운 사람살이 품은 단풍나무
[경향신문]
들녘의 빛깔이 달라졌다. 길가의 나무들도 초록빛을 내려놓고 가을빛을 머금었다. 은행나무에서 도토리나무까지 숲의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물들 채비를 마쳤다. 가을빛의 백미는 단연 단풍나무 붉은빛이다.
정읍 내장산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단풍나무 숲의 최고 절경으로 일컬어져왔다. 자연 상태에서 빽빽이 군락을 이룬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면 가을 풍경의 진수를 느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표적인 단풍나무 숲이다.
내장산 단풍나무 숲은 예부터 조선팔경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아름다운 숲이다. 내장산 단풍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를 담은 전설이 있다. 옛날에 내장산 서래봉 아래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서 어머니가 산길에 나섰는데, 어두워진 숲길을 헤매다가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길이 엇갈린 아들은 느지막이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아, 산신령께 어머니의 무사귀가를 빌며 밤을 지새웠다. 아들의 효심과 어머니의 자식 향한 애정에 감동한 산신령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길을 환히 밝히기 위해 온 산의 나뭇잎을 붉은빛으로 물들였다고 한다. 모든 아름다움은 사람살이에서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전설이다.
내장산을 대표할 만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지난 8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내장사에서 계곡을 따라 남서쪽으로 300m쯤 떨어진 급경사의 너덜겅 지역에 서 있는 ‘정읍 내장산 단풍나무’는 정읍시의 치밀한 조사 끝에 내장산의 모든 단풍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 밝혀졌다. 300년쯤 된 이 단풍나무는 높이가 17m에 이르고 가슴높이 줄기 둘레는 3m가 넘으며 나뭇가지 펼침폭은 사방으로 20m나 되는 큰 나무다. 우리나라의 모든 단풍나무를 통틀어 가장 큰 나무에 속한다. 생김새가 장엄한 건 물론이고, 생육 상태가 무척 건강하다는 것도 돋보인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가을 풍경을 꾸며온 단풍나무이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첫 나무라는 점에서 더 귀하게 보전해야 할 우리의 자연유산이다.
고규홍 천리포수목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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