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염치없는 낙하산 공공기관장
세금으로 고향에 추석 기부금… 낙하산 외도 막을 장치 있어야
공기업인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장이 추석 연휴를 앞둔 1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명절 인사 동영상을 올렸다. “충주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입니다. 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충주 시민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고 또 충주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올해 2월 취임한 인국공 사장은 작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충주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낙선 후 같은 당 충주지역위원장을 지냈다. 인국공 사장에 선임된 뒤에도 “정계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주말 등 시간이 날 때마다 충주를 찾아 민심을 챙기겠다”고 말한 게 알려져 논란이 됐었다. 사장 된 뒤 그는 주말이면 충주를 찾는다. 여성단체 회원들과 관광지 쓰레기를 줍고, 총리와 함께 충주 탐방에 나선다.
사장이 자신의 자리를 국회의원이나 내년 지방선거 교두보로 삼는다는 말이 인국공 내부에서 나온다. “마음이 콩밭에 있는데 공기업 발전은커녕 현안 해결이나 하겠냐”는 비판이다. 무리한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전국 취업준비생을 들끓게 했던 인국공 사태를 해결하라고 보냈는데, 인국공 사태는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4200억원 적자를 본 인국공은 올해 83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올 들어 35개 공기업 임원진에 친정권 인사 40여 명이 새로 내려앉았다. 정권 말에 더 노골적이다. 강원랜드는 아예 임원 라인업을 낙하산 부대로 새로 짰다. 사장은 민주당 지역위원장 출신, 부사장은 민주당 의원 비서관 출신, 상임감사는 현 정부 총리실 공보실장 출신, 비상임이사는 민주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출신이다.
준정부기관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도 비슷한 상황이다. 작년 총선 전북 부안·김제에서 낙마한 여당의 3선 의원 출신이 올 초 기관장으로 왔다. 700여 명 aT 조직은 이후 ‘새만금 식량 콤비나트’라는 이름으로 새만금 지역에 곡물·식품 가공 유통기지를 만들자며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자문단을 꾸렸다. 사장이 총선 출마 당시 내세웠던 지역 공약 ‘새만금경제수도 건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정책이다. 사장 취임 이후 aT가 내놓은 보도자료 40%는 ‘사장이 오늘 무슨 행사를 하셨다’는 동정 자료다. 이례적으로 ‘취임 100일 성과’라는 자료도 냈다. aT 도서관에는 사장이 정치활동 중 쓴 책 5권이 순식간에 비치됐고, 사장의 정치 고향인 전북은 그의 단골 출장지가 됐다. aT 관계자는 “어차피 왔다 갈 사람인데, 사장으로 있을 때는 스타일대로 맞춰야지 어쩌겠냐”고 한다.
사장을 견제할 이는 없다. aT 상임감사도 여당 당직자 출신이다. 2018년 전남 신안 군수선거 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뜻을 접었고, 작년에 감사가 됐다. 이후 감사실 직원 10여 명과 고향에 양파 농가 일손 돕기를 가고, 청렴 의지를 전파하겠다는 행사를 만들어 고향에서 진행했다. 꾸준히 내년 지방선거 군수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이번 추석 직전, aT 감사는 신안군복지재단에 aT 돈 200만원을 기부했다. 200만원이면 8인 가구 재난지원금 정도의 많지 않은 돈이라지만, 왜 세금으로 정치인 출신 감사가 광을 내는지 알 수 없다.
‘내 임기 때 낙하산은 없다’고 말하는 대통령 후보는 믿지 않는 편이다. 선거 논공행상이라 민주주의 체제가 치러야 하는 일종의 비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다음 정권에도 낙하산 근절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낙하산도 염치는 있어야 한다. 염치를 기대할 수 없다면 적어도 공공기관을 맡고 있는 동안 본분에서 외도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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