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과 대신 또… 2차 가해 선택한 택배노조

곽래건 기자 2021. 9.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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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석운 택배노동자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사진 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안진걸 민생연구소장, 오른쪽은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이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택배노조와 한국진보연대 등으로 이뤄진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27일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택배노조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40)씨 사건에 대한 추가 입장을 발표했다. 이씨 사건에 대한 두 번째 공식 기자회견. 이씨 발인식이 있던 지난 2일 첫 기자 회견 당시 노조는 “이씨에게 빚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등 사실상 2차 가해를 한 바 있다.

그로부터 25일 뒤 열린 간담회. 그 사이 그들은 달라졌을까. 이씨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런 기대를 가졌다. 노조는 “고인의 사망을 애도하며 유족분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노조는 이어 A4 용지 41장 분량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 “노조원들이 그렇게 행동할 만한 이유가 있었고, 이씨에 대한 행동은 괴롭힘이 아닌 정당한 노조 활동”이라는 반박이 골자였다. 자료 곳곳에는 “노조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노조는 “고인이 평일에 골프를 쳤다”면서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온 골프 라운딩 사진 6장을 첨부했고, “해외 여행, 골프, 풀빌라 여행, 자택 내 호화 방음 인테리어 등 고인 가족의 풍요로웠던 생활을 확인했다”고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그런데 골프 사진 6장 인물은 이씨가 아니었다. 이씨 동생과 이씨 지인이었다. 사진 속 풀빌라는 노조원들도 함께 갔던 곳이다.

노조는 “이씨 가족이 노조원들이 배송 거부한 물건을 아침부터 대신 배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이씨를 공격했다. 사실이 아니다. 이씨 가족은 전날 차에 물건을 미리 실어놓고 택배 터미널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배달 장소로 가곤 했다. 노조원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실제 노조원들과 만난 적도 있었다. 한 노조원이 오전 10시쯤 이씨에게 “○○(배송지)에서 뭐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게 이씨 휴대전화에 남아있다.

노조는 “이씨가 대리점 운영을 포기한 이유가 CJ대한통운(원청) 때문이고 이게 죽음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반복했다. 유족과 터미널 측 설명은 전혀 다르다. “노조 괴롭힘 때문에 운영을 포기했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결국 노조는 이날 가해자로 볼 수 있는 노조원들 일방적 주장만 여전히 되풀이했다. 그나마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이 수두룩했다. 앞서 이 사건을 둘러싸고 여론이 악화하자 노조는 “고인에 대한 괴롭힘에 대해선 사회적 비난을 달게 받겠다”면서 잠시 고개를 숙인 바 있다. 때문에 이날 기자간담회에선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역시나’였다.

이제 노조에게 더 이상 진심 어린 사과나 반성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유족들 가슴에 못을 박는 ‘거짓 주장’만이라도 그만 두길 촉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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