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웃는가' 만큼 중요한 '누가 웃지 않나'[2030세상]

김지영 마케터·작가 2021. 9.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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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에 결혼했다.

식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술자리에서였다.

흥에 취해 이런저런 농담이 오가는 가운데 한 남성 지인이 장난스럽게 말을 막았다.

'아주머니'는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하니, 원뜻에서 모멸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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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마케터·작가
스물일곱에 결혼했다. 초혼 평균 연령이 서른은 거뜬히 넘는 시대니 자연스럽게 또래 그룹 ‘유부 1호’가 됐다. 식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술자리에서였다. 흥에 취해 이런저런 농담이 오가는 가운데 한 남성 지인이 장난스럽게 말을 막았다. “아줌마는 빠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자리를 빠져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보고 아줌마는 빠지래….”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그 겨울 차가운 주차장 바닥에서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돌아보니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미혼 친구들 사이 유일한 기혼으로 처음 느꼈던 소외감. 그것을 저열하게 낙인찍은 무례함에 대한 당혹스러움. 무엇보다 그 기저에는 ‘아줌마’라는 표현에 대한 학습된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오랜 뒤에야 깨달았다. 본디 ‘아줌마’의 사전적 정의는 ‘아주머니를 낮춰 이르는 말’이다. ‘아주머니’는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하니, 원뜻에서 모멸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대화의 맥락과 발화 방식에 따라 무고한 단어도 혐오 표현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반대 경우도 있다. 명백한 혐오 표현이 무감하게 쓰이는 경우다. 몇 해 전 엄마는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 후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나도 모르게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내뱉고 흠칫 놀랐다. ‘암’은 희화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질병, 고통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개중에는 애써 그 어원을 찾지 않으면 혐오 표현 여부를 알기 힘든 경우도 있다. ‘매우 많다’는 뜻인 줄로만 알았던 ‘오조오억’이 ‘남성 정자가 쓸데없이 5조5억 개나 된다’는 의미의 혐오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식겁했던 경험이 있다.

해가 쌓이고 역할과 수식이 늘면서 다양한 혐오 표현을 마주한다. 때로는 찬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던 피해자였지만, 알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는 가해자이기도 했을 것이다. 조금만 주의하면 피할 수 있는 가해가 있는 반면, 각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함정에 빠지기 쉬운 가해도 있다. 최근 코미디쇼 ‘SNL코리아’의 ‘인턴 기자’ 혐오 논란만 해도 그렇다. 사회 초년생 여성의 어색한 말투와 행동을 희화화한 것이 누군가에게 재미난 캐릭터 묘사로 여겨질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비하와 조롱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내 사회 초년을 떠올리며 ‘웃픈’ 마음으로 영상을 보고 난 후 뒤늦게 논란의 존재를 파악했다. 스스로의 둔감함에 당황했고 타인의 예민함에 감탄했다.

김지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유머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청중의 반응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줌마’에 울었던 나도 ‘인턴 기자’를 보고 웃었고, ‘인턴 기자’를 보고 웃었던 우리도 서구의 아시아인 묘사 개그에는 웃지 않을 것이다. 웃지 않는 사람보다 웃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유머란 괜찮은 것일까.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고도 성립되는 무해한 웃음을 소비하고 싶다. ‘의도하지 않았다’ ‘몰랐다’는 말로 정상 참작이 가능한 시절은 저물었다. 예민함이 미덕인 것만은 분명한 시대다.

김지영 마케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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