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참!]이해진·김범수 의장님 '가두리 양식' 그만두세요
[경향신문]
영국 유학 중이던 2006년 5월 BBC가 한국인의 인터넷 뉴스 신뢰도가 유난히 높다고 보도하길래 신문방송 모니터링 데이터베이스에 넣어두었다. 조사에 응답한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평균치보다 훨씬 높은 85%가 인터넷을 통한 뉴스 접근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대안언론으로 떴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인터넷과 포털을 통한 정보통신망 구축을 적극 지원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5년, 한국은 가구 인터넷 접속률이 99.7%로 세계 1위를 달리는 등 정보통신 최강국이 됐으나 언론 신뢰도는 꼴찌 수준이다. 한국 언론과 국민이 네이버와 다음, 양대 포털에 포획된 탓이다. 창피해서 신문에 싣지 못하는 기사도 포털에는 대문에 버젓이 걸린다. 한국 언론은 가두리양식장 물고기나 백화점 미끼상품 같은 신세다. 언론과 포털의 잘못된 만남은 우리 언론의 병폐를 중증질환으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이 편리한 포털에 빠져들 때부터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확증편향을 수익모델로 삼는 포털이 민주주의에 어떤 타격을 줄까 하는 우려였다. 민주주의 역사는 그리스 페리클레스 시대부터 쳐도 2500년인데, 정보통신혁명 시대를 맞아 포털이 건전한 공론장 형성에 일대타격을 가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포털이 후원하는 모임에 방청객으로 가서 그런 지적을 했다가 주최 측 눈총을 받은 적도 있다.
포털에서 클릭 수를 올려야 기사 전재료와 광고료를 많이 받게 설계돼 있으니 선정적이고 과장된 뉴스를 퍼 나르는 데 혈안이 된다. 방치되는 포털의 댓글도 큰 화근이다. 지난해 1월 영국 가디언은 악플 등으로 한국의 배우와 K팝 가수 등 30명이 자살했다며 ‘비난 게임’(blame game)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때 다음 포털이 운영하던 ‘아고라’에서는 한국 사회 이슈를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치열하게 개진됐으나, 요즘 포털이나 유튜브에서는 클릭 수 많은 기사가 좋은 기사로 여겨진다. 각 진영에서는 떼로 몰려가 댓글로 유대감을 확인한다. 그리스의 아고라는, 종교의 영역인 아크로폴리스와 달리 시민생활의 중심이자 민회가 열려 밑바닥 여론을 형성하던 곳이다. 아고라는 개방성과 함께 책임성을 중시했다.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위험인물로 지목돼 도편추방의 대상이 됐다.
외국에서는 포털에 검색 기능만 있고 알고리즘에 관해서도 편향성 등을 엄격하게 감시한다. 포털의 편향성과 여론 집중이 문제가 되는 것은 숙의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공론장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언론은 흔히 ‘제4부’로 불리는데, 그것을 두 포털이 장악한 사태는 심각하다.
포털의 알고리즘에 최적화한 조직이 클릭 수 많은 중앙, 조선, 한국경제 등의 어뷰징팀이다. 이들의 일상은 세계 권위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영국 데일리메일과 더선, 미국 뉴욕포스트 등의 선정적 기사를 베끼는 일이다. 독설로 연명하는 사이비 논객과 극단적 정치인의 페이스북은 그들의 ‘단골 출입처’다. 포퓰리스트의 확성기 구실을 하는 언론도 문제지만 그렇게 유도한 건 포털이다.
팬데믹 시대라고 하지만, 악의로 만든 바이러스 같은 가짜뉴스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인포데믹(infodemic) 시대이기도 하다. 포털 개혁은 언론중재법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중대한 과제다. 국회는 플랫폼 업체인 포털의 골목상권 침해와 택시 콜서비스 요금 인상 등을 문제 삼아 네이버 이해진과 카카오 김범수 의장을 소환했지만, 비판 여론이 더 들끓는 지점은 여론시장 독과점이다.
김범수 의장은 상생기금 출연과 배달서비스 철수 등을 발표했지만, 민주주의 존망의 문제로 떠오른 것은 ‘뉴스 배달 독과점’이다. 김 의장은 네이버를 떠났다가 ‘카카오톡 대박’으로 금의환향할 때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해 감동을 주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성장은 국민의 기여로 이룬 것이다. 이젠 뉴스라는 미끼상품 없이도 플랫폼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포털이 여론시장 지배력을 넓히는 데 계속 몰두한다면 몇몇 재벌보다 더 큰 욕을 먹고 이해진·김범수 의장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오명으로 기록될까 걱정이다. 규제 이전에 뉴스 시장에서 검색 기능만 남기고 철수하는 결단을 내려줄 것을 부탁드린다.
이봉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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