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오커스, 비핵화, 핵무장
[경향신문]
#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주 전 영국·호주와 새로운 삼각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 체결을 깜짝 발표했다. ‘쿼드’ ‘파이브아이즈’에 이어 원자력추진 잠수함(‘원잠’) 삼각동맹 결성으로 안보협력 블록을 강화했다. 누가 봐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오커스의 등장이 멀리는 브레턴우즈체제의 종언(1971년 8월)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부터 가깝게는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기에 이르기까지 누적된 미국 대외정책 위기의 변화를 예고하는 변곡점이 될 게 확실하다.
중국 견제에 있어 ‘탄광 속의 카나리아’ 역할을 해 온 호주가 총대를 멨다. 그 대가로 미국과 영국은 호주에 특급비밀인 원잠 관련 기술과 연료 등을 공급하기로 했다. 1958년 미국이 영국에 유사한 기술 등을 전수한 이후 63년 만이다. 졸지에 프랑스는 2016년 호주와 맺었던 디젤 잠수함 12척, 약 77조원에 달하는 계약을 날렸다. 미국의 군사동맹국 원조인 프랑스의 굴욕감과 배신감은 깊고 오래갈 것이다.
#2 오커스 출범은 핵비확산체제 패러다임 이동의 전조(前兆)이자 아시아 군비경쟁의 서막을 올린 사건이었다. 북한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24일 조선중앙통신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틀 전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밝힌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 제안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미사일지침 종료선언과 호주로 원잠 건조기술 이전 등을 종전선언의 걸림돌로 못 박았다.
하지만 7시간 후 느닷없이 종전선언 필요성을 강조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반전(反轉) 담화에 이어 급기야 지난 주말에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할 차례인)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러나 설사 내년 2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만난다 하더라도 남은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북·미 비핵화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합심해서 비핵화와 관련한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강한 의지가 애당초 없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불과 8개월 남은 시점에 속된 말로 ‘누구 좋으라고’ 미국이 산적한 국내 긴급현안들을 놔두고 북핵문제를 먼저 풀려고 할까. 워싱턴이 비핵화 협상의 연기(煙氣)만 피운 것에 성과 내기에 초조한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책임자들만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는 모양새가 됐다. 북핵문제는 근본적으로 미·중의 역학 관계 속에서 방향과 속도가 결정되는 의제이기에 현재 미·중관계를 감안할 때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북핵문제를 단박에 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속셈이 읽히는 김여정의 ‘개인’ 발언을 놓고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
#3 미·중 경쟁의 향배가 불확실한 가운데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자주국방과 균세(均勢)를 목표로 다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법을 사용해야 맞다. 일례로, 일찌감치 사망선고를 받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천명하고, 동시에 국제 비확산체제 준수와 핵투명성을 강조하는 법 내지 규범 등을 별도로 제정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핵비확산조약이 허용하는 농축의 물꼬를 틀 수 있다. 나아가 독자적 농축이 불가능하도록 자물쇠를 꽁꽁 채워놓은 한·미원자력협정까지 풀어야 할 당위성이 생기게 된다.
실재(實在)하는 북핵 위협에 대한 국민들의 정직한 분노를 독자적 핵무장 논리로 치환시키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는 설익고, 무모하며, 성마른 포퓰리즘이다. 차라리 에너지 독립 관점에서 제약 없이 농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서울과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이 각자의 레드라인을 다시 긋는 담대한 행동을 보여줄 때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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