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분홍 셔츠를 입은 이유

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 2021. 9. 28.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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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분홍셔츠를 입으래요." 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가 잔뜩 뿔이 난 얼굴로 인사도 잊은 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

학교에 분홍셔츠를 입고 온 학생이 괴롭힘을 당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2007년 캐나다에서 시작한 '핑크셔츠데이'라는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의 일화였다.

선생님은 분홍셔츠를 직접 입음으로써 폭력을 경계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일깨워 주고자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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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1

"선생님께서 분홍셔츠를 입으래요." 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가 잔뜩 뿔이 난 얼굴로 인사도 잊은 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 학교에 분홍셔츠를 입고 온 학생이 괴롭힘을 당했다. 선생님이 폭력은 절대 안 된다면서 분홍셔츠를 나눠주며 함께 입자고 하셨다고 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2007년 캐나다에서 시작한 '핑크셔츠데이'라는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의 일화였다. 아이는 선생님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말씀만으로 충분한데 분홍셔츠를 입고 등교하려니 부끄럽다고 했다.

맹사성은 황희와 함께 성군 세종대왕 시대를 이끈 명재상이다. 어린 나이에 급제한 맹사성은 덕망이 높은 고승을 찾아가 좋은 지방관이 될 방안을 물었다. 고승은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좋은 일만 하면 된다고 답했다. 당연한 이치가 아니냐며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며, 백 번 보는 것이 한 번 깨우치는 것만 못하며, 백 번 깨닫는 것이 한 번 행하는 것만 못하다(百覺而 不如一行·백각이 불여이행)는 가르침을 줬다. 선생님은 분홍셔츠를 직접 입음으로써 폭력을 경계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일깨워 주고자 하셨다. 이튿날 아이는 교실에 팽개쳐 두었던 분홍셔츠를 고이 접어 집으로 가져왔다.

'백각이 불여일행'은 제품의 가치를 전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돕는 체험 마케팅의 핵심 개념이다. 2014년 들어온 이케아(IKEA)는 판매하는 제품만으로 전시관을 꾸몄다. 또 고객을 1박2일 '이케아룸'으로 초대해 체험기회를 제공했다. 이케아는 단 4개 점포로 업계 3위에 올랐다. 아모레퍼시픽도 좋은 사례다. 20년 전 개관한 '오설록'은 제주도의 관광명소가 됐다. 자원순환의 가치를 전하는 '공병공간'과 다양한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아모레성수'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최근 대면체험이 어려워지자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과학기술에서도 체험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세계 10위지만 연구·개발 규모는 다섯 계단이나 높은 세계 5위다. 경제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과학기술이 기여했다는 믿음이 있어 가능했다. 이 믿음을 지속하려면 시대적 사명에 부응하는 연구·개발은 물론 일반 국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첨단기술과 혁신제품일수록 그 내용과 가치를 국민에게 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국민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서울지하철6호선 상월곡역에 사이언스스테이션을 운영한다. 역사 벽면과 기둥에 과학기술 역사, 인물, 주요 성과와 미래 모습을 담았다. 혁신기술 제품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리빙랩도 있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했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위한 체험형 과학동화연극은 6개월 예약이 금방 완료될 만큼 인기가 좋다. 예산과 역사공간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지 않지만 시민에게 친숙한 공간에서 과학기술을 전한다는 의미가 크다.

창의적인 소통채널이 필요하다. 수림문화재단과 KIST는 예술가와 연구자가 함께 참여하는 작품활동을 지원하고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인공망막, 팸토초레이저, 로봇, 센서,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이 설치·조각·회화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술가에게 새로운 모티브를, 연구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관람객에게는 과학기술을 예술적 감성으로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2019년 '사용된 미래', 2020년 '재난 감각'에 이어 올해도 '데이터'를 테마로 예술가와 연구자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 모두를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겸허한 자세로 실행해야 한다. 맹사성이 방을 나설 때 문틀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지요." 고승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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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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