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칼럼] '사유의 인간' vs. 책벌레

곽아람 기자 2021. 9. 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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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들에게 ‘내 인생의 책’을 꼽아달라 요청하면서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꼽은 책엔 어떤 대통령의 상이 반영되어있을지가요. 우리가 보통 ‘어떤 책을 좋아한다’고 할 때엔 그 책의 가치와 우리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니까요. 다양한 답이 나왔습니다. 누군가는 평등을, 누군가는 공정을, 누군가는 인격을, 누군가는 이념을 대통령이 될 법한 인물의 우선가치로 내세웠다는 점이 흥미로왔습니다.

이재명은 ‘불평등 해소’, 이낙연은 ‘인격’이 핵심 키워드, 윤석열은 ‘국가의 실패’, 홍준표는 ‘이념 갈등 극복’ 내세워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 회고록 '약속의 땅'.
내가 찾은 피난처는 책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독서 습관은 아주 어릴 적부터 배어 있었다. 내가 지루하다고 짜증 낼 때, 나를 인도네시아 국제학교에 보낼 여력이 없을 때, 애 봐줄 사람이 없어 나를 데리고 일하러 가야 할 때 어머니는 으레 책을 내밀었다. 가서 책을 읽으렴. 다 읽고 나서 뭘 배웠는지 말해줘.

버락 오바마 전(前) 미국 대통령 회고록 ‘약속의 땅’을 읽다가 이 구절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흑백 혼혈에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란 오바마는 어린 날 자신이 “모든 곳에서 왔으면서도 어디에서도 오지 않은 사람”같은 기묘한 감정이 찾아들 때마다 책으로 도피했다고 합니다. “우리 아파트 맞은편 센트럴 유니언 교회의 바자회에서 오래된 양장본이 담긴 통 앞에 서 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관심이 가거나 막연히 친숙해 보이는 책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랠프 엘리슨과 랭스턴 휴스, 로버트 펜 워런과 도스토옙스키, D.H. 로런스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책들이었다.” 고등학생이던 오바마는 그 책들을 모두 읽었답니다. “그 때 읽은 것들 대부분은 막연하게만 이해했다. 이걸로 뭘 할지는 몰랐지만, 내 소명의 성격을 알아내는 날엔 쓸모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이번주 Books는 대선주자들의 ‘인생 책’ 특집으로 마련했습니다. 흔히들 그 사람이 읽은 책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하지요. 비판적 사고 없이 책 속 내용을 맹신하는 사람만큼 위험한 존재도 없겠지만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영향을 준 책이 궁금해,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을 넘기다 맹목적인 독서의 위험을 경고하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바이든은 어린 시절 말 더듬는 버릇을 고치려 에머슨의 문장들을 통째로 외웠답니다. 특히 이 구절을요.

온순한 젊은이들이 도서관에서 자라난다. 그들은 키케로, 로크, 베이컨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믿는다. 키케로, 로크, 베이컨이 이 책을 썼을 때 단지 도서관에 있던 젊은이였다는 사실은 잊어버린다. 이 때문에 ‘사유의 인간’ 대신 책벌레가 생겨난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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