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우 '즐기는 테니스로, 더 높은 곳으로'
[경향신문]
18년 만에 한국선수로 ATP 정상
즐겁게 운동하며 잠재력 끌어내
정현의 ‘랭킹 19위’ 그 이상 도전
테니스 라켓을 본격적으로 잡은 건 초등학교 4학년. 출발부터 늦었다. 주니어 시절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던 또래들에 가려 인정도 받지 못했다. 권순우(24·당진시청·사진)는 화려하지 않지만 꾸준한 발걸음으로 한국 테니스의 첫길을 걸어가고 있다.
권순우는 지난 26일 카자흐스탄 누르술탄에서 끝난 아스타나오픈에서 정상에 오르며 한국 선수로는 18년 만에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했다. 이형택(은퇴) 이후 18년8개월 만에 나온 한국 테니스 역사상 두 번째 ATP 투어 단식 타이틀 홀더다. 권순우는 이 우승으로 27일 ATP 투어가 발표한 세계 랭킹에서 지난주 82위보다 25계단이나 오른 57위가 됐다.
권순우가 이번 대회를 통해 더 높은 곳에서 경쟁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한 템포 빠르게 처리하는 스트로크는 구석구석을 찌르며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무기로 자리 잡았다. 약점이던 서브에는 스피드와 정확성이 생겼고, 긴장감 있는 상황에서 실수도 줄었다.
NH농협스포츠단 박용국 단장은 “권순우가 작년부터 부족한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결실이 나오는 것 같다”며 “이번 대회에서 스트로크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또 서브 득점 확률을 높였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했다. 소속팀 당진시청의 최근철 감독도 “체력적으로 좋아지면서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권순우가 예년과 비교해 많이 밝아졌다”며 심리적으로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했다.
최 감독은 권순우의 완만하지만 꾸준한 상승 곡선에 대해 “권순우의 최대 강점은 테니스를 너무 사랑한다는 점이다. 매 순간 즐겁게 운동한다. 그러니까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권순우는 아마추어 시절 정현(25), 홍성찬(24), 정윤성, 이덕희(이상 23) 등에 가렸던 시간이 많았다. 테니스 선수로는 다소 왜소한 180㎝·72㎏의 체구인 데다 확실하게 내세울 무기가 없었다. 권순우라는 이름을 알린 건 깜짝 발탁된 2017년 국가대항전 데이비스컵에서 당시 80위였던 데니스 이스토민(우즈베키스탄)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나서다. 지금은 한국 테니스 최고 랭킹 선수이자 에이스로 활약 중이다.
권순우는 올해 개인 메이저대회 최고 성적인 프랑스오픈 3회전(32강), 이형택 이후 13년 만의 올림픽 본선 출전, ATP 투어 우승 등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57위는 개인 최고 랭킹이다. 이제 권순우의 시선은 이형택의 최고 랭킹 36위, 메이저 16강, 정현의 최고 랭킹 19위 등을 향한다. 세계 테니스의 벽이 높지만 투어에서 뛰는 아시아 선수들의 전성기가 20대 후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박용국 단장은 “서양 선수들의 높이와 파워를 권순우만의 방식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며 “향후 2~3개 대회가 중요하다. 자신감을 이어가 확실하게 궤도에 오르면 50위권 진입은 물론, 아스타나오픈 규모의 대회에서는 꾸준히 우승권에서 경쟁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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