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돌아온 '탱크'
[경향신문]
역도 선수는 악어처럼 팔이 짧아야 유리한데, 그는 팔이 길어 힘들었다고 했다. 역기를 들어올리면 뒤로 넘어지기 일쑤였다. ‘코리안 탱크’ 최경주(51)가 기억하는 완도 섬마을의 중학생 시절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운동선수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운명처럼 골프를 만난다. “역도를 하고 싶은 사람 나오라”고 해서 뛰어나갔더니 선생님이 거기 모인 10명을 두 줄로 나눈 뒤 한쪽은 골프부, 다른 쪽은 역도부라고 정했다고 한다. 최경주는 골프부 쪽에 서 있었다. 그는 훗날 “사람은 줄을 잘 서야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며 웃었다.
골프가 뭔지도 모르고, 높은 그물망이 설치된 연습장을 꿩 사육장으로 알았던 그가 손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연습과 훈련을 거듭해 국내 최강에 오르고 미국 무대에서도 눈부신 업적을 낸 것은 끊임없는 도전의 결과였다. 2002년 5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첫 우승 이후 2011년 5월까지 통산 8승. 아시아 선수 최다 우승 기록이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매번 저돌적으로 경기를 펼쳐 ‘탱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는 최경주다.
한국 남자골프의 개척자인 최경주가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27일 미국 페블비치에서 열린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승해 한국 선수 중 처음으로 PGA 챔피언스 투어 정상에 오른 것이다. 8번째 우승 이후 10년4개월여 만에 PGA 주관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50세가 넘어서도 현역 PGA 투어 선수로 뛰고 있는 최경주는 지난해부터 50세 이상 선수들이 출전하는 시니어 대회인 챔피언스 투어에도 나서고 있다.
2011년쯤 ‘최경주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나오자 그는 이렇게 받아쳤다. “내 골프 인생의 전반 9홀을 마쳤을 뿐, 아직 9홀이 더 남아 있다”고. 이 말이 10년 후에 다시 빛났다. 최경주는 한창 우승을 할 때에도 “우승은 오늘의 일이고, 내일은 또 도전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이날 우승 후 인터뷰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며 각별한 소회를 밝혔다. 10년여 만에 트로피를 들어올린 감격이 울려퍼졌다. 그래도 ‘탱크’는 내일 또 도전할 것이다. 목표를 향해 부단히 변화하는 삶을 꿈꾸기에.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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