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 기술] 까다로운 운영규정 무력화한 법무법인 지평 | 현대건설, 청파동 주택재개발추진위 상대로 대법서 승소

이미호 조선비즈 기자 2021. 9. 2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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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변호사는 법무법인 지평 건설·부동산팀 소속으로 건설 및 부동산 관련 분쟁과 자문 업무를 맡고 있다. 국내 주요 건설사 공사대금 청구 소송과 개발사업 진행 소송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등 건설사·시행사 관계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지평

재건축·재개발 관련한 소송 트렌드는 통상 지역 특성뿐만 아니라 부동산 경기와 맞물린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경우, 시공사 선정을 놓고 각축전이 펼쳐진다. 이른바 ‘돈을 벌기 위한’ 싸움이다. 사업성이 좋은 부지를 두고 대형 건설사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삼파전 양상이 되기도 한다. 어렵게 시공사로 선정됐다가 별안간 ‘계약 해제’ 당하는 일도 발생한다.

반면 사업이 지지부진하거나 아예 추진이 안 되는 경우에도 분쟁은 발생한다. 대여금 분쟁이 대표적인데, 건설사가 추진위에 빌려준 돈을 환수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다. 이른바 ‘패전처리 비용’을 놓고 건설사와 재개발추진위원회가 다투는 경우다.


자금차입에 인감증명서까지? 이례적인 ‘운영규정 조항’

최근 현대건설(법무법인 지평 대리)은 서울 청파동 주택재개발추진위원회(법무법인 청연)를 상대로 제기한 상고심에서 승소했다. 2018년 12월 항소심 판결이 난 이후 1년 8개월 만에 받은 결과다.

이번 사건은 현대건설이 해당 지역의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 청파주택재개발추진위(이하 추진위)에 빌려준 대여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추진위는 2003년 6월 4일 주민총회를 개최해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당시 결의에는 시공사로부터 자금을 차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후 2003년 8월 28일 양측은 도급계약을 체결했고, 추진위는 2003년 11월 9일~2011년 4월 9일까지 총 5차례에 걸쳐 현대건설로부터 12억원을 차용했다.

쟁점은 ‘자금차입의 효력’이 성립하는지 여부였다. 추진위는 운영규정을 문제 삼아 양측이 체결한 소비대차약정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운영규정에 따르면 ‘토지 등 소유자의 비용부담을 수반하거나 권리와 의무에 변동을 발생시키는 경우에는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1 이상이 인감도장을 사용한 서면동의를 하고 인감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2심은 추진위가 자금차입 시 인감증명을 첨부한 서면동의가 없는 경우 자금차입 효력을 부인해 온 대법 판례를 근거로, 현대건설 손을 들어준 1심을 뒤집고 추진위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양측 계약이 무효로 되면, 현대건설이 추진위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청구 제기는 가능하지만(법률상 원인 없이 대여됐다는 점에서 부당이득으로 본다), 법률상 부당이득반환 청구의 경우 연대보증책임을 물을 수 없게 돼 있다. 즉 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실효성이 없는 소송이 된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다. 상고심에서 추진위는 “유효한 대여라고 생각해서 당시 대여금 반환을 연대보증한 것이지, 이 대여가 애당초 무효를 가정해 돌려주는 책임까지 연대보증한 것은 아니다”라고 맞섰다.

이에 현대건설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지평의 건설부동산팀은 자금을 시공사로부터 빌리기로 한 결정은 추진위 운영규정 시행 전에 이미 이뤄진 것이므로, 소비대차약정 시 토지 등 소유자의 별도 동의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감증명서를 받도록 한 운영규정 조항이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말 그대로 규정상 조항일 뿐 실질적 규범력이 없다고 피력했다.

지평의 정원(사법연수원 30기) 변호사는 “형식이냐 실질이냐의 문제”라며 “총회 의결때도 인감증명 낸 사람이 없는 데다 그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다. 구청의 행정지도조차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진위 운영규정 같은 경우, 고심해서 만들지 않는다”면서 “말 그대로 어쩌다 짜깁기로 만들다 보니 불필요한 조항이 들어갔고 (항소심 재판부가) 문헌을 과도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자금차입의 유효성 여부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대여한 것이 아니라 돈을 빌리기로 한 것은 이미 총회 때 결정이 됐고 그때 체결된 소비대차계약은 앞선 의결에 따른, 연속선상의 시행 행위”라고 피력했고 이를 대법원이 받아들였다.

서울시에 연립·다세대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 연합뉴스

시공사, 추진위와 ‘패전처리 비용’ 놓고 다투는 이유는

사실 건설사가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면 추후 사업 확보를 위한 영업 활동에 단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조합을 압박하는 건설사’로 낙인찍힐 경우 사업권 확보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이처럼 시공사가 재개발·재건축 단계에서 추진위나 조합에 돈을 빌려줬다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는 전국적으로 많은 편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서울보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방의 경우는 더하다.

실제로 10여 년 전만 해도 대우건설을 중심으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건설사들이 채권 회수에 나서면서 이러한 소송이 매우 잦았다. 즉, 건설사 입장에서 보면 ‘비용 처리’ 문제인 셈인데 기울이는 노력에 비해 회수되는 비용은 적은 편이다. 또 채권 회수 판결을 받는다 해도 실제 비용으로 회수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이 채권 회수를 하려는 이유는 법인세법상 비용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세법상 비용 처리를 하려면 건설사가 채권 회수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 증빙돼야 한다. 또 법원 판결을 근거로, 지자체 조례에 따라 매몰 비용을 보전받을 가능성도 있다.

정 변호사는 “추진위 운영규정이 시행되기 전 자금차입을 전제로 한 도급계약이 체결된 경우라 하더라도 소비대차의 유효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항소심은 연대보증을 한 추진위 보호라는 측면에서 판단했지만, 대법은 결국 추진위 내지 조합, 시공사, 지자체 등을 놓고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리스크를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대해 고심했다고 본다”고 의의를 부여했다.

정 변호사는 재건축·재개발 이슈를 포함, 부동산 사업 전반에 대해 폭넓은 이해도를 갖춘 전문변호사로 정평이 나 있다. 1998년 사법시험에 합격, 한국건설관리학회 고문변호사를 거쳐 2004년부터 지평에 몸담고 있다. 실제 대우건설 대여금 청구 관련 30개 이상의 사건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부산 최대 정비사업인 대연 8구역 재개발 사업과 관련 조합원들을 대리해 ‘시공사 선정 총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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