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철에서 사람으로.. 하늘만 바라보던 고대인들, 땅을 보다

강구열 2021. 9.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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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언가를 노려보는 듯한 무늬를 새긴 청동 세발솥이 관람객들을 처음 맞는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역시 청동기에 새겨진 무늬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상나라, 주나라 시기 청동기에 신화나 상상 속 동물을 무늬로 선택해 장식한 것이다.

앞선 시기에 제작된 청동기에도 사람이 표현되었으나 "온전히 사람의 모습과 행위를 그대로 표현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동적인 서사를 담은 것은 이때야 비로소 출현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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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국 고대 청동기' 특별전
中 박물관서 빌린 청동기 67점 전시
무늬 통해 당시의 세계관 변화 보여줘
초기 청동기, 신 숭배하기 위해 제작
점차 인간 지배하던 신의 지위 줄고
솥·찜통 등 일상용기로 쓰임 달라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중국 고대 청동기’에 출품된 세발솥(왼쪽 사진)과 소 모양의 술통. 세발솥에는 전설 속 괴수인 도철이, 술통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어 고대 중국인들이 청동기를 통해 표현한 신숭배의 관념을 읽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언가를 노려보는 듯한 무늬를 새긴 청동 세발솥이 관람객들을 처음 맞는다. 세발솥에 새겨진 건 흔히 ‘도철무늬’라 불린다. ‘도철’은 무엇이든 먹어치워 결국엔 자신의 몸도 먹어버리고 머리만 남았다는 전설 속의 괴수다.

전시회의 말미에 이르면 관람객은 영상 하나와 만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대여해 오지 못해 영상으로 대신한 ‘그림이 있는 술병’ 청동기다. 술병 표면을 가득 채운 그림의 주제는 인간이다. 일상생활에서부터 사냥과 농업에다 전쟁까지 다양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세발솥(서기전 11세기쯤)과 술병(서기전 5세기쯤) 사이에 놓인 시간의 간격은 약 600년. 초기 문명을 일군 인류의 시선이 이 시간 동안 하늘의 신에서 땅 위의 인간으로 서서히 이동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중국 상하이박물관에서 빌려온 중국 고대 청동기 67점으로 꾸린 특별전 ‘중국 고대 청동기, 신에서 인간으로’는 문명의 초기 첨단기술이었던 청동기에 고대인들이 어떤 세계관을 투영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역시 청동기에 새겨진 무늬다.

서기전 3000년쯤, 자연상태의 홍동이 우연히 발견됐고, 100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황하 유역에 하나라를 세운 고대 중국인들은 그것을 청동기로 발전시켰다. 청동기 제작기술은 점차 발전해 상나라 후기(서기전 13세기∼11세기)에 이르면 종류와 수량이 다양해지고, 서주(서기전 1046년∼771년) 중기에 이르면 정점을 찍는다.

제작 초기 청동기는 신을 숭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됐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상나라, 주나라 시기 청동기에 신화나 상상 속 동물을 무늬로 선택해 장식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도철 무늬다. 애초 지나친 탐욕을 경계하는 의미를 가졌으나 점차 신숭배, 최고 권력을 대표하는 무늬로 자리 잡았다.

소의 형상으로 만든 술통에는 청결함과 생명의 연속을 상징한 매미 무늬와 함께 몸통에 봉황무늬를 크게 새겼다. 서주 중기에는 봉황무늬가 자주 사용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용과 함께 봉황을 신처럼 숭배했다. 이 시절 청동기는 단지 음식이나 술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신을 위한 봉헌의 매개체였다. 그 안에 묘사된 신은 어떤 두려움도 물리칠 수 있는 무서운 존재여야 했고, 이 때문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주나라가 망한 뒤 전개된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면 청동기는 일상 용기로 쓰임새가 바뀌어간다. 솥이나 그릇, 찜통, 주전자, 향로, 등잔 등이 청동기로 제작되는 것이다.

일상생활, 전쟁, 사냥, 연회 장면 등을 묘사한 그림으로 가득 장식된 전국시대의 술병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술병에 새겨진 그림 무늬 속에는 약 100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전투나 연회, 사냥, 농경의 주체로 그려져 각기 다른 움직임 속에서 생생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앞선 시기에 제작된 청동기에도 사람이 표현되었으나 “온전히 사람의 모습과 행위를 그대로 표현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동적인 서사를 담은 것은 이때야 비로소 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즈음이면 사람들은 자연과 사물의 속성, 원리에 대해 조금씩 과학적인 인식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공자나 순자 같은 철학자들이 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거나, 하늘은 인간사회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설파한 것은 신보다는 인간을 앞세우는 시대정신의 한 표현이었다.

서울대 김병준 교수는 “청동기 표면에도 인간을 지배하던 신의 지위가 줄어들었고 전국시대 청동기에는 신이 사라지는 경향이 뚜렷했다”며 “그 대신 사람이 등장했고, 상하이 박물관의 그림 청동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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