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병역의 본질은 '자유수호'.. 20대 황금기 '의무'로만 남지않길

2021. 9. 2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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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D.P, 軍 어두운면 파헤쳤지만
軍에 대한 희화화·사회적 무관심에
국방, 의미는 빠진채 의무만 남아
서로다른 체제의 남·북 잠재적 위협
상호인정 동조하기전까진 경계 유지
18개월 軍복무로 일시적 자유제한
대의적 민주주의 지키기 위한 과정
1950년대의 38선과 오늘날의 군사분계선. 일러스트 윤소영
군대 병영생활을 생생하게 그린 것으로 평가받는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 출처=넷플릭스
윤지환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⑥ 북방 이해를 위한 지리적 사고 - 대한민국 군인을 위한 항변(4)

◇군대 드라마가 몰고 온 시선의 변화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콘텐츠에서 군 생활을 희화화하는 바람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상명하복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빡빡한 군대 조직에서 생전 처음 본 사람들과 18개월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은 솔직한 말로 상당한 고역임이 분명하다. 그것도 휴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복무기간을 부대 안에서만 보내야 하는 생활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인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현역 군인들의 희생은 무엇보다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마친 예비역들은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군대 경험을 주로 웃으면서 넘어가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과 있을 때의 쿨한 모습과는 달리 전역 후 군대의 악몽을 꾸거나 복무했던 지역을 향해 고개도 돌리지 않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예비역들의 부정적 회상은 군 경험이 단순히 가벼운 농담 소재만은 아님을 반영한다.

이러한 군 생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 군인이 감당하고 있는 고뇌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한 경향을 보인다. 예비역 본인들부터 군대에서 겪은 어려움을 개그 소재로 사용하거나 혹은 아예 언급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대한민국 남자로서 당연히 가야 하는 군대'라는 인식적 틀 속에 장병들의 고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에 기인한다. 이러한 인식 구조와 사회적 분위기는 장병들이 군대에서의 고민거리를 쉽게 언급할 수 없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부대 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장병들의 고충에 대한 무관심은 하소연할 곳 없는 군인들의 외로움, 심하게는 자살까지도 이어지는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하도록 만든다.

군인에 대한 사회적 희화화와 무관심 속에 방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는 부대 내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호평받고 있다. 현역과 예비역에게는 생생하게 묘사되는 장병들의 모습이 군 생활에 대한 공감을 선사하며 여성들에게는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부대 내 날 것 그대로의 부조리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기존의 TV 예능 프로그램이 웃음 속에 가리고 있었던 부대 내 고충을 실감 나고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병영생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환기하는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이를 통해 병사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 및 해결책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계기가 되길 개인적으로 희망해보는 바이다.

물론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드라마 디피가 몰고 온 순기능은 상당한 의미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추가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대체 무엇 때문에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18개월의 자유와 청춘을 희생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답은 국방의 의무겠지만 이는 너무 추상적이고 진부하다. 사실 입대를 앞둔 청년 중 대부분은 국방의 의무보다는 늦어지는 병역이 인생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차질을 줄 수밖에 없다는 압박감 때문에 군대에 가게 된다. 입대 첫날 연병장에 모여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을 먼발치에 두면서 국방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마찬가지이다. 병역의 '의미'는 빠지고 '의무'만 남은 군 생활은 장병들이 스트레스를 인내해야 할 명분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며 대한민국 군대 전반의 존재 이유와 군 기강 확립을 설득하는 과정에도 장애물로 작용한다. 본 칼럼은 드라마 디피가 몰고 온 장병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시선을 넘어 대한민국 군대의 존재 이유와 역할의 본질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한반도의 맥락에서 이에 대한 부분이 명확히 인식되지 않는 한 군인에 대한 진짜 처우 개선과 군 기강 확립은 요원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의는 한국전쟁의 의의를 정립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전쟁이 물려준 유산

대한민국 군대의 의미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한국전쟁이 가져온 결과와 후속 여파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전쟁으로 인해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되었고 휴전선이 그어졌다는 서사는 너무 뻔한 대답이지만 사실 한국 사회는 이 정도 수준 이상의 논의가 대중적 차원에서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군대가 징병제로 전환한 것도, 알고 보면 한국전쟁을 치르고 난 후 국방력 강화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시행된 것이다. 이는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전쟁을 치른 후 남한과 미국은 한반도를 공산 진영으로부터 수호해야 한다는, 이전에는 없던 확실한 경각심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남쪽의 대한민국은 신생 정부로서 국가의 비전이나 방향성이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다. 이는 국정 운영상의 심각한 의견 차이로 인해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요인이었다. 그리고 전쟁 후 그어진 군사분계선은 전쟁 이전 남과 북의 경계였던 38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한의 일상적 도발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쟁 이후의 이러한 모든 상황은 남쪽의 대한민국만큼은 자유에 기반한 국가 운영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식을 싹트게 했다.

광복을 맞이한 후 한반도가 과도한 무장화에 접어드는 것을 반대했던 미국의 의도에 따라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한동안 징병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올 수 있는 군사적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38도선이 있었지만, 이는 지형적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경계였기 때문에 남북한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었다. 당시에 촬영된 38선 사진을 보면 마을을 잇는 좁은 시골길 가운데 북위 38도선 팻말과 간단한 초소만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는 경계로서의 38선은 유명무실하였으며 남북한의 마을 주민들 간에는 비교적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였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난 후 양쪽의 치열한 공방 끝에 설정된 군사분계선, 일명 휴전선은 남과 북 2km에 걸친 비무장지대와 남방한계선으로부터 최대 20km까지 뻗어있는 민간인출입통제선을 거느리고 있어 이를 자유롭게 뚫고 갈 수 있는 한반도 사람은 거의 없다. 철책을 사이에 두고 삼엄한 양측 군대의 경비 속에 보안이 지속되고 있는 군사분계선은 오늘날 남과 북의 민간인 왕래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이는 남한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측면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반대로 북한의 입장으로 보자면 군사분계선은 주체사상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고마운 존재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아픔을 자아내긴 하지만 말이다. 한편에선 이를 다소 극단적인 관점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우리와는 너무도 이질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진 상대를 항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은 사회 안정과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확실한 차단의 효과를 가지지 않은 경계는 잠재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상대로부터의 국경 유린과 사회적 혼란을 감수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에서 발원한 사이비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Boko Haram)은 주변국에 늘 골칫거리를 제공한다. 이들은 서구식 교육에 반대하여 지역의 여성들을 대규모로 납치하고 성적 유린을 일삼으며 경계가 느슨한 나이지리아 국경을 넘어 주변국인 차드, 니제르, 카메룬 등으로 세력을 뻗어가고 있다. 아무런 방어선도 없는 이들의 국경을 살펴보면 무장한 보코하람 세력이 검문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나이지리아의 국경이 우리의 군사분계선과 같은 경비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면 보코하람과 같은 무장단체가 쉽게 주변국으로 확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이웃 국가들은 최소 보코하람과 같은 외부의 적 때문에 골치를 썩이지는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들의 내부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이렇듯 같은 경계라고 해도 그것이 어떤 성격을 가지냐에 따라 국경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은 천차만별이다. 만일 한국전쟁 없이 38선을 경계로 남북한 체제가 유지되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한국전쟁이 필요악이었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400만 명에 가까운 참전 군인과 민간인들은 목숨을 잃었으며 남한에서의 산업 시설은 궤멸적인 피해를 보게 되었다. 또한 군사분계선으로 인해 남북 간 육로 이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결과 서로의 땅에 가족들을 남겨둔 사람들은 생이별의 아픔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한국전쟁과 군사분계선이 우리에게 남겨준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는 향후 대한민국이 지키고 유지해야 할 가치의 이해와 국제사회에서의 우리의 역할을 설정하는 과정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과 대한민국 군대 본질적 역할

만약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 대한민국과 비슷한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었다면 군사분계선과 같은 인위적 지리 여건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은 서로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경계의 구축에 공을 들여왔다. 서유럽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로부터 위협을 느낀 과거 소비에트 연합은 동유럽 위성국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바르샤바조약기구(Warsaw Treaty Organization, WTO)라는 거대한 경계 지역을 설정했다. 이보다 작은 범위로는 동과 서를 갈랐던 베를린 장벽을 꼽을 수 있다. 다양한 스케일과 형태를 갖췄지만 어쨌든 이러한 강력한 경계를 만드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체제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함이다. 미국-캐나다와 같이 서로 비슷한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간에는 느슨한 경계를 가져도 크게 상관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대상이 코앞에 있다면 그 상대가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동조하기 전까지는 강력하게 보안이 유지된 경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군사분계선을 유지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물론 이는 대한민국 국체의 보존일 것이다. 하지만 군사분계선의 의미는 그보다 더 깊다. 군사분계선은 대한민국과 유엔 연합군이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피를 흘리며 지켰던 자유의 가치를 유지한다. 자유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치이며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고유의 권리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절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신으로부터의 명령을 받았음에도 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고 말았다. 죄의 결과 두 사람은 신의 말대로 나이가 들면서 죽게 되었다. 그러함에도 그들에게 순종 여부를 자율적으로 맡긴 것은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은 자유의 허락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곧 자유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자 권리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자유는 여러 가지 법과 정책의 틀 속에서 보장된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법과 정책의 모든 방향성이 집단 속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렴한다. 여기에는 어떤 정의나 공공의 선 같은 명분도 간섭할 수가 없다. 공공의 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하나씩 양보하게 되면 결국은 인권의 유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을 위한다는 정의가 결국은 자유를 기반으로 한 인권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보코하람의 이슬람 정신과 공산주의의 평등을 향한 외침은 그들 스스로 생각했던 최고의 정의였지만 그들은 정작 여성 납치, 공개 처형, 재산 몰수, 종교 탄압, 정치 교화, 집단 학살과 같은 끔찍한 시스템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군사분계선 이남에서 오늘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는 자유 수호를 향한 병역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 군대는 자유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곳이지만 그 무엇보다 앞장서 한국인의 자유를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와 문화가 꽃피우는 과정은 오늘도 군사분계선에서의 경비를 수행 중인 대한민국 군대가 있기에 가능하다. 통일을 추구하기 이전에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생각해야 하며 북한이 이에 설득되기까지 우리는 인내할 수밖에 없다. 민족의 통일이라는 대의보다 앞서 충족되어야 할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 기반한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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