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돈방석 앉는 과학자 더 나오려면
국책연구기관에서 성공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기술료로 '돈 버는 과학자'가 나온 지는 꽤 됐다. 이들은 자신이 수행한 국가 또는 민간 R&D 과제에서 창출한 연구성과를 특허로 확보한 후, 이를 기업에 이전 혹은 출자, 양도하는 다양한 기술계약 방식으로 기술료 명목의 수익을 올린다.
액수로 보면 적게는 수백 만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월급 이외에 소득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통해 국가 발전과 기업 성장에 기여하고, 그 대가로 새로운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일석이조'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 이들은 동료 과학자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몇 해 전부터 기술 시장과 산업 규모가 예전에 비해 커지면서 수천 만원의 기술료 수입 갖고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최근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소속 연구자가 기술이전 대가로 최소 150억원 이상의 기술료를 받을 것이란 입이 쫙 벌어질 만한 '잭팟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 발단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2000년 초반 기술 이전한 면역개선 관련 건강기능식품을 소개하는 TV 광고가 최근 방송 전파를 타면서 시작됐다. 이 광고를 접한 시청자들은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이 제품의 핵심 기술을 개발한 곳이 한국원자력연구원이라는 점에 한번 놀라고, 원자력 분야만을 연구하는 줄 알았던 원자력연이 이런 기술을 개발했다는 데 또 한번 놀랐다는 반응이다. 이 제품은 원자력연이 자체 개발한 방사선 융합기술을 2006년 제1호 연구소기업에 출자한 것을 면역개선 제품으로 출시한 것이다. 공공기술 사업화 모델인 '연구소기업'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있었기에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원자력연은 설립 이후에도 연구소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협력과 기술사업화 지원을 통해 만 10년인 2015년 2월 이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하게 됐고, 기술 출자 대가로 이 회사 지분의 12.04%를 보유하게 됐다.
원자력연은 상장 이후 주식 가치가 계속 상승하자 1차로 보유 지분의 4.36%를 팔아 총 484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소위 '잭팟'을 터트렸다. 1차 기술료 수입(484억원) 중 제반 비용과 세금 등을 제외한 순수익금은 330억원에 달했다.
원자력연은 순수익금 330억원 중 규정에 따라 절반은 연구기관(165억원)에서 회수해 R&D 재투자, 기술사업화 등의 재원으로 충당했고, 나머지 절반 165억원은 기술개발에 참여한 연구자 17명에게 기여도에 따라 차등 배분했다.
당시 17명 중 기여도가 가장 높은 두 명의 연구자는 각각 17억원, 12억원(세전)의 기술료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5년이 지난 지난해에도 원자력연은 2차로 보유 지분의 6.02%를 매각해 1차 때보다 2배 더 많은 988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 역시 절반은 기관에, 절반은 17명의 연구자에게 올 초 배분이 끝났다.
2차 매각으로 최고 기여자인 두 명의 연구자는 또다시 각각 86억원, 63억원(세전)의 기술료 수익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원자력연은 안 그래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움츠리고 있던 상황에서 기술출자 수익으로 1, 2차 포함해 약 600억원이라는 큰(?) 돈을 자체적으로 벌어 다소나마 기를 펼 수 있었다. 이 돈은 원자력 안전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과 추가적인 기술사업화에 투입되고 있다.
원자력연은 마지막으로 남은 6.02%의 주식을 증시 상황과 기관 재정 등을 고려해 매각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3차 매각까지 이뤄지면 기여도가 가장 높은 연구자 2명은 최소 150억원 이상의 기술료 수입을 손에 쥐게 되면 '로또 당첨' 부럽지 않을 것이다. 원자력연 역시 가뜩이나 정부 지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비워가는 'R&D 곳간'을 채울 수 있어 재정적 여력도 확보하게 된다.
안타까운 일은 가장 기여도가 높은 연구자가 1차 기술료 보상을 받기 전에 세상을 떠나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원자력연 사례처럼 앞으로 '제2·3의 기술료 대박 행진'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연구 몰입을 위한 안정적 연구 환경 조성과 PBS(과제중심제도) 등 연구현장을 옥죄고 있는 법·제도적 족쇄를 하루빨리 풀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관련 규정을 빌미로 사사건건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고, 연구 자율성·독립성을 과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래야만 '과학적 세렌디피티'(Serendipity·우연과 실패 속 중대한 발명)가 나올 것이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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