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무대에서 '인종차별 없는 세상' 보여주고 싶었죠"

한겨레 2021. 9. 2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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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재독 공연연출가 이보영씨

“소수자 목소리는 항상 거칠었던 것 같아요. 그게 안타까웠어요. 저 역시 독일 친구들이 많지만 ‘찢어진 눈’을 뜻하는 독일어 ‘슐리츠아우겐’이 욕이 아니라 애칭처럼 쓰일 수도 있는 거예요. 결국 마음의 문제이죠. 이걸 너무 구조적 문제로만 받아들이면 결국 또 다른 싸움을 낳아요. 그렇게 되면 사회는 점점 더 이분화 되죠.”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불거진 인종차별을 주제로 삼은 실험극 <칭창총 소나타 1번>이 독일에서 최근 세 번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 자리한 대안문화공간 ‘니르겐트보’에서 열렸다. 이 작품은 지난 8개월간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한·중·독 청년 예술가 12명이 협업한 실험극 프로젝트로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적 요소를 망라했다. 지난해 봄 팬데믹 초기 베를린 지하철 공간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모욕 사건을 연상시키는 이 실험극은 지하철에서 독일 청년과 한국 청년이 몸이 바뀌는 체험을 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이번 공연의 기획과 연출은 이보영(36·사진 왼쪽)씨가, 대본은 박경란(49·오른쪽) 작가가 썼다. 내년 재공연을 준비하는 이씨를 지난 12일 만났다.

이씨는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2013년부터 무용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3년째 여러 문화예술후원단체에 공연예술 기획을 지원하다가 독일공연예술재단에 당선되어 <칭창총 소나타> 작품 팀을 꾸렸다. 칭창총은 독일인들이 가위바위보 할 때 쓰는 말이지만 최근 아시아 언어를 흉내내며 비웃을 때 쓰기도 한다.

먼저 작품 소개를 부탁했다. “비빔밥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해요. 여러 재료가 한 공간에 뒤섞여서 공감각적으로 메시지를 전하죠. 예술의 힘이 매우 크잖아요. 무의식을 흔들 수 있고, 사람의 삶을 뒤바꿀 수도 있죠. 특정 시공간 속에 음향적, 시각적, 가능하다면 후각, 미각까지 자극해서 사람의 감각을 잡아 휘감도록 구상했어요. 공감각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이죠. 헤테로토피아, 즉 현실이 아닌 연극적 공간입니다.”

어떻게 시작했을까? “코로나로 이슈가 된 인종차별을 주제로 실험극을 해보자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작품에 또 문학과 미술, 무용, 음악 네 장르가 꼭 어우러지게 하고 싶었어요. 작업은 시작할 때부터 어디로 어떻게 갈지 모르고 그냥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작년 9월부터 인종차별이란 무엇이며 거기서 ‘칭창총’이 왜 놀림의 언어가 되었는지, 어원탐구부터 시작해 팀원들이 각자 공부했죠.” 작품에서 인종차별이 사회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집중하고 싶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제 주위에 흑인 커뮤니티가 있어요. 작년 9월은 미국 흑인 인종주의 반대 운동으로 시끄러운 시기였고, 그들이 인종주의를 해석하고 풀어가는 방식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팀원들이 의견을 나눴죠. 가령 동방박사 중 한 명이 흑인인데도 교회에서 흑인 인형을 까맣게 칠하는 자체를 인종차별로 보는 거예요. 어두운 피부색 자체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터부시해요. 이게 오히려 사회를 양분화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작품을 준비하며 인종차별에 대처하고 있는 방식을 두고도 많은 생각을 했단다. “가령 어느 신문기사 제목이 ‘나도 차별당했다’였어요. 다들 자기가 한번 차별당했다고 선언하는 것이 마치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은 분위기가 안타깝고 슬펐어요. 같은 문화권의 내 조국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도 너무 슬픈데 그것을 대처하는 방식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하는 거죠. 우리 프로젝트에서는 ‘우리는 그래서 어떤 세계를 꿈꾸는가? 인종차별이 극복된 세계는 뭘까?’를 물으며 함께 갔던 것 같아요. 이슈를 건드리기보다는 마음을 건드렸죠. 너나 나나 똑같은 인간이고 그걸 누가 말해줘서가 아니라 공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런 시간이 되기를 원했죠.”

인종차별 주제극 ‘칭창총 소나타’
베를린서 최근 세차례 공연 ‘성황’
연출과 기획, 섭외 맡아 이끌어
한·중·독 예술가 12인 8개월 협업
코로나 이후 아시아인 혐오 계기

“어려서부터 예술로 세상 바꾸는 꿈”

그는 작품 기획과 연출, 섭외를 한꺼번에 해냈다. 이런 힘은 어디서 왔을까?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예술교육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엠트리’라는 비영리단체를 통해 2013년부터 매년 여름 한 달간 아프리카에 가서 아이들에게 미술교육 봉사를 했어요. 그런데 미술도 재료가 필요한 활동이라 이 아이들은 우리가 떠나면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죠. 그때 들었던 생각이 ‘왜 우리는 공연을 하지 않을까?’였죠. 공연은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을 하고 거기서 무용극을 하나 만들었어요. 비록 15분짜리 공연이지만 애들이랑 맨땅에 헤딩하듯 하면서 ‘정말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걸 느꼈죠. 부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가 아프리카에 간 이유이기도 하죠.”

실험극 <칭창총 소나타 1번> 장면. 한주연 통신원 제공

그는 어릴 때부터 예술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단다.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죠. ‘세상은 예술이 아니어도 변하는데 내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가?’ 저는 ‘예술은 힘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왜냐면 저 자신이 예술로 치유 받은 체험이 있어서죠. 중2 때 사고를 당해 죽을 뻔했는 데 기적적으로 구조되었어요. 원래 저는 소극적이고 존재감 없이 자랐는데 미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새롭게 태어났다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예술을 하도록 허락해달라고 부탁드렸죠. 그전엔 계속 반대하셨거든요. 미술을 하면서 삶이 아름다워지고 행복했던 것 같아요. 정신적인 어려움도 미술로 극복했어요. 아름다움 자체가 좋지 않은 감정을 떨치도록 해주었죠.”

그는 <칭창총 소나타 1번>은 ‘다름’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했다. “몸이 바뀐 독일 청년이 나오는 건 ‘독일인 너도 당해봐’ 이게 아니라 역지사지로 공감해보자는 거죠.”

베를린/글·사진 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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