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발사주 의혹, 언론의 프레임 전환 성공했나
'조선'은 어떻게 '고발사주' 프레임을 무마시켰나
초기 사건 외면하다 제보자 공격, TV조선 보도 이후 '박지원 정치공작설' 꾸준히 주장
여론조사 결과 공작설 찬반 여론 중도층에서도 팽팽, 정치적으론 '공작설' 성공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뉴스버스가 지난 2일부터 보도한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사건이 주요뉴스에서 흔적을 감췄다. 이유는 세 가지다. '고발사주' 의혹 관련 당사자들이 관련 의혹을 부인하면서 언론보도로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어려워 수사기관의 공으로 넘어간 측면이 있고, 새로운 논란인 대장동 개발 관련한 사건이 주목을 끌고 있어서다. 또한 '고발사주' 사건을 '제보사주', '박지원 정치공작설' 등 여권발 공작 프레임으로 전환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고발사주' 사건은 '윤석열 검찰'-손준성 검사-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총선 후보-조성은 당시 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을 거쳐 고발장이 당에 흘러갔고, 해당 고발장 중 일부가 실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고발장에 쓰였다는 의혹이다. 뉴스버스가 '윤석열 검찰'로 표기하면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주목받긴 했지만 이는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와 같은 표현이다. 이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직접적인 개입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사건 초기 윤 후보의 모범답안은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관련자는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내 관리책임에 대해 사과드린다. 향후 윤석열 정부 수사기관에서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 정도다. 하지만 윤 후보는 뉴스버스를 '메이저언론'과 대비되는 '인터넷매체'라 폄하하며 흥분한 모습을 보여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 당시 여타 매체와 달리 조선일보는 1면과 사설에서 이 소식을 다루지 않으며 사건을 사실상 외면했다. 그러다 지난 6일 “'윤석열 고발 의혹' 최초 제보자 누구였나 논란”이란 기사를 통해 제보자가 누구인지로 논점을 전환하려 했다. 이후 기자들의 추적으로 제보자 조성은씨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만 해도 야권 내부의 일이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야권과 여권 사이에 전선을 만들었다. 7일 조선일보는 “윤석열 의혹 규명, 親정권 한동수가? 못믿겠다”란 기사에서 한 현직 검사의 주장을 인용보도했다. 또한 대검이 제보자를 공익신고자로 만든 것에 대해 '친정권 인사인 한동수 감찰부장의 야권의 대선주자 공격'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지난 9일 보도했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조성은씨가 제보 이후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났다'는 내용의 지난 10일자 TV조선 보도였다. 이때부터 고발사주 의혹이 아닌 박 원장이 조씨에게 제보를 사주했으며(제보사주) 결국 여권, 국정원의 정치공작(박지원공작설)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박 원장과 조씨는 각각 둘의 만남이 이번 사건의 제보와 관련 없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등과 야권이 제기한 의혹처럼 만약 박 원장이 조씨에게 언론제보를 사주했다면 박 원장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있지만 이 사실이 '윤석열 검찰'-손준성-김웅-조성은-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흔들진 못한다. 조씨에 대한 추궁이나 비판 역시 마찬가지다. 조씨가 다른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제기된 의혹이 거짓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TV조선 보도는 금요일 밤이었다. 다음주 월요일 13일자 조간에서 조선일보는 1면에서 “與보좌관 출신 검사가 윤석열 수사”란 기사를 통해 윤 후보에 대한 수사가 정략적이라는 보도를 이어갔다. 윤 후보는 마치 피해자처럼 비쳤다. 이날 정치면에선 박 원장과 조씨, 조씨와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의 연루설에 대해 각각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후에도 고발 사주 의혹이 아니라 박 원장과 조씨에 대한 소식을 꾸준히 전했다. 이는 현재 여권 인사로 분류되는 박 원장이 야권 후보인 윤 후보를 공격한다는 이미지를 강화했다.
오피니언면에서도 이 사건을 여야의 정치공방처럼 만들며 야권의 단결을 주문했다. 지난 13일 류근일 칼럼에선 “국민의힘 각파와 자유 진영 부족들도 이젠 정신 좀 차렸으면 한다”며 “적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칼럼의 부제는 “좌파의 '윤석열 죽이기'에 자유주의 진영 정치인들 단결해 맞서 싸워야”였다.
14일 김대중 칼럼 “어떤 매든 꿩 잡으면 된다”에선 '고발사주' 의혹의 진원지가 야당 내부일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렇다면 '새 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득권 정치가 다시금 작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다른 야당 후보와 단일화 못하고 내부 단결 못하면 경선은 아무 의미 없는 개싸움이 되고 만다”고 우려했다. 경선 과정에서 윤 후보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파괴적으로 가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의혹 초기에 침묵하던 '조선'이 제보자(메신저)에 대한 공격, 박지원 원장의 공작설, 국정원을 포함해 수사기관을 이용한 윤석열 압박 등을 주장하며 시도한 프레임 전환은 야권 지지층에겐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대응논리를 제공했고, 거대양당을 지지하지 않는 층에는 정략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4일 전국 만 18세 남녀 1000명에게 실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고발사주 의혹이 정치공작이라는 주장에 대해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공감한다”(42.3%)와 “공감하지 않는다”(43.7%)는 응답이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1%p) 내에서 팽팽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공감 비율, 민주당 지지층에선 비공감 비율이 각각 높았다. 중도층에선 공감(45.9%)과 비공감(41.3%)이 비슷했다.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야권에서 제기한 '정치공작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최근 하락하던 윤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멈추거나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안이 '고발사주'와 '공작설'로 맞서면서 이에 대한 판단도 진영별로 나뉘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론 '공작설' 프레임이 성공한 셈이다.
이제 공은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서울중앙지검은 공공수사1부에 이 사건을 배당해 수사 중이다. 고발장의 작성자는 누구인지, 대검 간부가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넘겼는지, 윤 전 총장이 작성에 관여했는지 등이 관건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를 11월5일 확정하는 가운데 검찰은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가 고발사주 의혹 관련해 가장 최근에 다룬 사설은 17일자 “野 후보 죽이기 경쟁, 공수처·법무부 이어 대검·중앙지검·경찰 가세”였다. 조선일보는 “윤 전 총장이 고발을 사주한 것이 맞는지, 아니면 반대로 정권 측이 의혹 제보를 사주하는 것이 맞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면서도 “야당 대선 주자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대한민국 수사기관이 전부 다 나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결정될 때 검찰이나 공수처의 기소여부가 결정되더라도 수사기관의 편파성을 계속 지적할 것으로 보인다. 혹 윤 후보가 기소되더라도 재판이 제대로 시작되기 전 대선은 끝이 난다.
새로운 사실관계가 나오지 않는 이상, 고발사주 의혹의 정치적 역할은 수명을 다했다. 2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르면 이날 조성은씨를 불러 조사한다는 동아일보 기사 외엔 보수성향 신문에서 '고발사주' 관련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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