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속 피해번호..제작진, 지울 '노력'은 안 해봤나요

남지은 2021. 9. 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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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원만한 해결 위해 노력 중"
고통 호소에도 장면 아직 달라진 것 없어
한 방송사 피디 "화면 편집 처리, 어려운 일 아냐"
<디피> 등 작품마다 문제 계속
자본에 취해 기본 잊은 건 아닌지 돌아봐야
넷플릭스 제공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워요. 당신이 저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개인 번호가 유출되었거나, 유사해서 피해를 본 여러 명 중 한명은 기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잘 해결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기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며칠 사이 전화와 문자가 쏟아진 탓에 휴대폰이 제멋대로 발신되는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단다.

<오징어 게임> 제작진은 실제 누군가 사용 중인 번호를 극 중 게임 초대 번호로 사용해 여러 명에게 피해를 줬다. 1~2회 등장하는 ‘8××× – 4×××’와 마지막 9회 등장하는 ‘2××× – 5×××’다. 여덟 자리 숫자는 화면 가득 또렷하게 잡힌다. 시청자들은 호기심에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다. 당연히 없는 번호인 줄 알았는데, 사용자가 있었다. 피해자들은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했다. 끝자리가 다른 경우 등 비슷한 번호 사용자들도 고통을 받았다. 자신을 취준생이라고 밝힌 한 피해자는 유사한 번호인데도 매시간 전화가 걸려왔다며 소셜미디어에서 호소했다.

제작사에서 피해자들에게 100만원, 500만원의 보상금을 제시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들린다. 넷플릭스 쪽은 “현재 작품상에 등장하는 번호의 소유주분들과 지속적으로 유선 통화 및 대면 미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원만한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진행 상황 등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넷플릭스 쪽은 개인 번호가 유출된 것을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27일 오전 재차 확인한 <오징어 게임>에서는 여전히 번호가 선명하게 등장했다.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한다면, 가장 먼저 숫자부터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숫자가 클로즈업되는 장면을 편집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한 방송사 피디한테 문의했더니 “화면 일부를 흐릿하게 하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보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이 미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홍보에 더 집중하고 있다.

넷플릭스 작품을 둘러싼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드라마 <디피>(D.P.)에서는 극 중 군대 내 가혹 행위 가해자인 황장수(신승호)가 전역 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5화에서 논란이 있었다. 황장수가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을 진열대에서 치우자 점주가 화를 낸다.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 쪽은 이 장면이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넷플릭스와 제작사에 항의했다. 넷플릭스 쪽은 코리아세븐 쪽과 협의 끝에 해당 브랜드의 로고를 컴퓨터그래픽으로 편집하기로 했다. 제작사는 세븐일레븐 쪽에 정확한 내용을 얘기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세븐일레븐 로고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될 일이다.

그동안은 번역을 둘러싸고 잘못된 정보가 전 세계에 번졌다. 일본 넷플릭스가 영화 <택시운전사>를 소개하며 작품 설명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대만에서는 드라마 <킹덤>을 <이시조선>이라는 제목으로 내보냈다가 <시전조선>으로 변경한 일도 있었다. 조선을 낮춰 이르는 말인 ‘이씨조선’에 좀비의 의미를 담은 ‘주검 시’를 넣은 것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 속 대사인 “지금 동해에 있다”를 독일어 등 6개 언어 자막으로 옮기면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 비판받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2021년 한국에 투자하는 금액은 5600억원이라고 한다.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디피>가 나오고 <오징어 게임>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에 취해 콘텐츠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감수성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케이블채널의 한 피디는 “이런 경우 피해자와 원만한 해결은 당연한 것이고, 더 큰 피해를 막으려면 화면 속 전화번호가 나오는 장면부터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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