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황금알에서 리스크가 된 '확률형 아이템'

박지영 기자 2021. 9. 2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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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게임이 나오면 뭐 하나, 다 똑같은 한국형 도박 게임 아니냐.”

게임 관련 기사에 심심치 않게 달리는 댓글이다. 여기서 이용자들이 ‘도박’으로 일컫는 것은 바로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이다.

국내 게임사 매출을 주로 담당하는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내 캐릭터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낮은 확률의 뽑기로만 얻을 수 있게 한 비즈니스모델(BM)이다. 특정 아이템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없고, 매우 희박한 확률에만 의존해 뽑을 수 있다 보니 이용자들 사이에서 “도박이랑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올해 초 넥슨의 대표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불거진 확률 조작 사태를 기점으로 재점화됐다. 급기야 다음 달 1일부터 열리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게임업계 중요 사안으로 확률형 아이템이 다뤄질 예정이다. 게임 소관 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뿐 아니라 국회 정무위원회 등도 김정주 넥슨 창업주, 강원기 넥슨 메이플스토리 디렉터, 강신철 한국게임산업협회장,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등 업계 인사들을 증인과 참고인으로 신청하거나 채택한 상태다.

사실 확률형 아이템 문제는 새롭지 않은 게임업계 병폐다. 올해 초부터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한 여러 구설에 오르자, 다시 한번 문제의 중심에 선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이미 지난 2018년 국정감사에 소환된 바 있다. 김 대표는 당시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이용자들에게 아이템을 공정하게 나눠주기 위한 기술적인 장치다”라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국내 게임산업의 매출을 17조원으로 추정했다. 김택진 대표가 국감에 소환된 2018년 이후 21% 성장했다. 국내 게임의 해외 위상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19년 국내 게임산업은 64억달러(약 7조5000억원)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의 16%를 차지하는 숫자다. 지난해 한국은 세계 게임 시장에서 점유율 5위를 차지했다. 이 정도로 덩치가 커진 산업에서 비즈니스모델로 지적을 꾸준히 받는 것은 문제다. 이쯤 되면 새로운 수익 구조를 이미 찾았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여론도 심상치 않다. 이용자들은 확률형 아이템으로 논란이 된 게임을 외면하거나 비판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넥슨의 메이플스토리다. 이용자들은 메이플스토리에서 일부 아이템의 확률이 조작됐다는 문제가 불거지자 스마일게이트의 대표 게임 ‘로스트아크’로 대거 이동하며 ‘메난민(메이플스토리+난민)’ 사태를 일으켰다. 국내 대형 게임사인 엔씨소프트는 올해 초부터 “확률형 아이템을 강조한 비즈니스모델을 모든 신작에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하반기 기대작 ‘블레이드&소울2′를 출시한 이후부터 이례적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곤경을 겪고 있다.

과거와 달리 유튜브와 소셜미디어(SNS) 등 게임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졌고, 적극적인 정보 공유도 가능해 더는 확률을 ‘일부의 문제’로 취급하기 힘들어졌다. 또 국내 게임사들이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는 경우가 늘어난 만큼, 확률형 아이템을 주요 수익 구조로 삼는 것이 위험하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해외 이용자들은 콘솔이나 PC 등의 기기에서 게임 패키지를 구매해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아 확률형 아이템과 같이 유료 상품을 지속해서 구매해야 하는 국내 게임을 낯설게 느낀다”고 말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이제 게임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넘어,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게임사에 큰 영향을 주는 ‘리스크’가 되고 있다. 이용자들이 게임사에 가장 큰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확률’을 믿기 힘들다는 점과 해당 수익 구조로 인한 지나친 과금 유도다. 확률형 아이템이 올해 국감에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로 오른 만큼, 이제는 게임사가 신뢰 회복과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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