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주인 못 가린 독일 선거, 서로 "우리가 정부 구성"

이본영 2021. 9. 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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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 사민당 25.7%, 기민-기사련 24.1%
기민-기사련은 최악 결과에도 연정 주도 의지
집권당·총리 못 정하는 상황 몇달 갈 수도
정치 양극화에 기존 연정 구성 공식도 파괴
'유럽 주도국' 메르켈 유산 승계도 불투명
올라프 숄츠 독일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가 26일 자당이 앞선 출구조사 결과를 접한 뒤 웃고 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26일 독일 연방의원 총선거에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중도우파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합에 박빙의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사민당이 16년 만에 정권 교체에 다가서기는 했지만, 차기 정권 주인이 누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 다음날인 27일 독일 선거관리위원회의 집계를 보면, 사민당은 735석의 주인을 가리는 연방의회 선거에서 2017년보다 5.2%포인트 증가한 25.7%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했다. 사민당과의 대연정에서 상위 파트너인 기민-기사련은 지난번보다 8.9%포인트나 줄어든 24.1%를 득표했다. 녹색당(14.8%)은 득표율을 5.9%포인트나 늘리며 3위로 올라섰다. 우파 자유민주당은 11.5%,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은 10.3%를 얻었다.

아르민 라셰트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연합 총리 후보가 26일 선거 직후 당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외신들은 26일 밤 베를린의 사민당 당사에서 라르스 클링바일 사무총장이 “차기 총리는 올라프 숄츠”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대연정에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한 사민당 총리 후보 숄츠(63)는 “훌륭하고 실용적인 정부 구성을 위한 유권자들의 매우 분명한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기민당 당사에서는 최악의 성적표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기민당이 바이에른주 자매당인 기사당과 함께 기록한 역대 최저 득표율은 전후 민주적 선거가 재개된 1949년에 거둔 31%였다. 하지만 기민-기사련 총리 후보 아르민 라셰트(60)는 패배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득표율이 30% 밑으로 떨어지는 참패를 당하고도 총리의 꿈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선거 결과가 나왔는데도 차기 정부 주도 정당이나 총리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것은 양당 득표율이 각각 과반에 한참 못 미치는데다 차이가 근소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독일 정부는 늘 1·2위를 다툰 기민-기사련과 사민당이 각자 제3의 정당을 끌어들여 연립정부를 구성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두 세력이 대연정을 꾸려 운영해왔다. 기민-기사련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 72년 중 52년을 집권했고, 메르켈 총리의 4회 연속 집권기에는 사민당과의 대연정이 세번이나 구성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통적 공식이 통하지 않게 됐다. 1위를 한 사민당이나 2위 기민-기사련 모두 득표율이 4분의 1 안팎에 불과해 제3정당을 하나만 끌어들여서는 연정 구성이 불가능하다. 대연정 탓에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는 사민당이 다시 기민-기사련의 손을 잡거나, 기민-기사련이 사민당 주도 연정에 하위 파트너로 들어갈 가능성도 별로 없다.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은 두 세력 모두가 협력하기 어려운 상대다. 유력한 선택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여론을 기반으로 약진한 녹색당이나 친기업 정당인 자민당을 모두 포섭하는 것이다.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게 된 녹색당과 자민당의 몸값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녹색당과 자민당은 한 세트로 움직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선 자기들끼리 미래 행보를 논의해보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궁극적 승자를 가리지 못하는 상황이 길게는 몇달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독일 방송사 <아에르데>(ARD)는 선거 뒤에도 “잠재적 총리가 둘, 잠재적 킹메이커도 둘”인 상황이 됐다고 표현했다. 사민당 총리 후보 숄츠는 크리스마스 전에 연정 구성 협상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메르켈 총리는 당분간 과도기를 관리하며 계속 정부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선거 뒤에도 정권의 향배를 몰라 정치권도 유권자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은 유럽에서 일반적 모습이 돼가고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였다. 기후위기에 녹색당 등 진보 정당이 성장하는 한편으로 반이민 정서를 타고 극우 정당도 약진하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각국에서 전후 정치를 이끌어온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거대 정당들은 정치 양극화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독일 정치의 혼란상은 16년간 안정적 성장 속에 이 나라를 유럽의 주도국으로 만든 메르켈 총리의 유산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키운다. 유로존 재정위기, 난민 위기,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와중에 지도력을 발휘해온 독일 정치의 표류는 유럽 전체의 불안정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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