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은 어떻게 넷플렉스 히어로가 됐나[MK이슈]
"기이하고 폭력적이나 창의적 설정"
"영리한 플롯에 세트 의상 음악 훌륭"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들로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다. 글로벌 열풍을 몰고온 이 드라마는 냉혹한 현실이 담긴 '사회의 축소판'이란 평가를 받으며 ‘드라마판 기생충’으로도 불린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감독 황동혁)이다.
24일(현지시간) OTT 콘텐츠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squidgame)’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넷플릭스 1위에 올랐다.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이날 기준 전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3위는 '루시퍼'다. 미국 넷플릭스에서 4일 연속 1위를 차지한데 이어 전 세계 1위에 우뚝 섰다. 또 독일 호주 영국 프랑스 일본 멕시코 등에서 1위를 비롯해 상위권에 랭크됐다.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 되지 않는 중국에서도 난리다. 중국 최대 SNS 웨이보에서는 해시태그가 19만회에 육박했고, 조회수는 9억 뷰에 달한다.
인기를 입증하듯 신인 배우 정호연의 SNS 팔로어는 ‘오징어 게임’ 공개 이후 40만 명에서 현재 250만 명으로 폭증하는 등 출연 배우들에 대한 관심과 인기도 글로벌하게 치솟았다.
국내에서는 여성과 노인, 외국인 노동자 묘사에 대한 논란과, 일부 장면이 폭력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등급 논란에 휩싸이며 호불호가 갈렸지만 해외에서만큼은 열렬한 호응 속에서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신드롬에는 외국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와 짜임새, 배우들의 열연도 있지만,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처럼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우리 만의 흥미로운 소재로 글로벌 하면서도 독창적으로 그려냈다는 게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룰은 단순하다. 5분 안에 술래의 눈을 피해 결승선에 들어오면 통과.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주최 측의 말처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규칙을 적용 받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을'들의 목숨을 건 치열하고도 잔혹한 싸움이다.
감독은 ‘오징어 게임’이라는 한국적 소재를 이용해 적자생존, 승자독식, 계층간 갈등 등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거대하고 화려한 게임장은 ‘사회의 축소판’이요, 탈북자와 해고 노동자, 외환위기로 좌절한 펀드매니저 등은 냉혹한 적자생존 논리 속 희생자가 된다. 여기에 각종 함축과 은유를 더해 볼거리와 읽을 거리, 생각할 거리까지 녹여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게임을 소재로 썼을 뿐 그 게임을 통해 사회, 자본주의를 들여다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생충'과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게임 자체보단 게임의 결과가 불러오는 살벌함이 더 강조된다. 실제 우리 사회처럼. 룰은 간단하고 그 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생기는데, 문제는 승패가 아니라 승자가 독식하고 패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환경이 아닌가. '오징어 게임'은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쉬운 장르와 구조를 기본으로 독특한 색깔을 입혀 같은 장르여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새롭게 보여진다. ‘기생충’ 뿐만 아니라 ‘D.P.’, ‘킹덤’도 그랬다. 데스 서바이벌은 특히 외국인들에겐 친숙한 장르인데 내용을 다르게 입혀 게임 자체의 복잡성을 줄이고 결과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했다. 이 게임을 통해 세상을 은유하고, 그것을 위한 장치로 각종 요소들을 활용한 거다. 그런 부분에서 외신의 호평이 쏟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결국 장르적 쾌감에 집중한 것이 아닌 사회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은유해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기생충’과 더 어울린다. 표피적인 자극을 주는 작품에 접근하면 논란이 많을 수 있지만 ‘오징어 게임’은 그 반대”라며 일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한 관심을 받는 이유를 설명했다.
배우들은 이야기의 힘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주연을 맡은 이정재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이 잘 녹여져 있어 흥미로웠다. 게임장의 구현 역시 놀라웠다. 무엇보다 지금이 딱 적기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위하준은 "대본을 보는 즉시 끝까지 다 읽어버릴 정도로 몰입도가 상당했다"며 이야기의 힘을 강조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도 ‘오징어 게임’이 가진 독특한 스토리의 힘을 높이 샀다. 포브스는 “기이하고 폭력적이지만 뛰어난 연기와 기억에 남을 만한 캐릭터, 창의적인 설정으로 가득하다”고 소개했다.
스페인 매체 시네마가비아는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리즈로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부분을 스릴러 장르로 파헤친다"고 호평했다.
이를 입증하듯 ‘오징어 게임’은 미국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전문가들이 작품의 참신함을 평가하는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했다.
굿즈며 극중 의상도 아마존 등 쇼핑몰에서 인기다. 이병헌은 지난 2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오징어 게임’ 로고가 그려진 게임기 모양 상자와 티셔츠 등 ‘오징어 게임’ 굿즈 사진을 공개하며 “모두 즐거운 추석 되시길”이란 인사를 남겨 화제를 모았다.
‘해외에서는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낯선 장르가 ‘데스게임’이다. 2000년 일본에서 선보인 '배틀로얄'을 시작으로 영화 시장 최고 흥행 시리즈 중 하나인 '헝거게임' 등으로 이어지며 보편화 됐다. 이 형식을 가져와 마음껏 변주한 전략이 통했다.
‘오징어 게임’에는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겼던 여섯 개의 추억의 놀이가 등장한다. 황동혁 감독은 “이 작품을 2008년에 구상했다. 한국적인 게임들을 서바이벌로 담은 작품이 탄생한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며 “실제 게임장의 공간과 흡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각 게임장으로 세트가 바뀔 때마다 실제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긴장과 압도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황 감독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오징어 게임’을 실현시키기 위해 압도적인 크기의 세트장을 만들었다. 1980년대 교과서에 등장했던 철수와 영희의 모습을 본뜬 로봇이 서 있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장부터 삶과 죽음, 가짜와 진짜가 공존하는 공간인 구슬치기 게임장까지. 각기 다른 콘셉트로 정교하게 제작된 게임장들이 해외의 장르물들과는 또 다른 미장센을 완성했다.
이정재는 “첫날 세트장에 가면 사진 찍기 바쁠 정도로 세트가 몽환적이었다"며 후기를 전했고, 정호연은 “공간 안에 들어간 순간 황홀했다"며 놀라운 경험을 회상했다. 박해수 역시 “기대와 상상 이상의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며 눈을 뗄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낸 제작진에 박수를 보냈다.
잔인한 게임과 절망적인 현실과 대조를 이루며 아이러니를 극대화한 미술과 음악도 감각적인 서스펜스를 완성하는데 한 몫 했다.
'오징어 게임'을 "틀림없이 올해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라고 극찬한 매체 '더 리뷰 긱'은 "특히 미술이 환상적이다. 밝은 색상과 화려한 영상이 게임의 거칠고 어두운 특성과 대조를 이룬다"고 평했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영리한 플롯이 화려한 세트, 의상, 훌륭한 음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고 호평했다.
이는 충무로 베테랑 제작진이 대거 투입된 결과물이었다.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 '도가니' 등 수차례 호흡을 맞췄던 채경선 미술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옥자' 등의 음악을 맡았던 정재일 음악 감독이 참여해 추억과 클리셰, 키치적인 요소가 뒤섞인 음악으로 차별성을 뒀다. 여기에 '반도' '부산행' 등의 작품으로 감각적인 영상을 담아낸 이형덕 촬영 감독까지 합세해 한국형 서바이벌 장르의 지평을 넓히며 해외 팬들을 사로잡았다.
뉴욕포스트의 대중문화 전문 사이트 디사이더의 조엘 켈러 기자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스릴 넘치는 드라마로 승화시켰다"고 평했고, 프랑스 RTL의 아르메닉 파르토노 기자는 "K드라마의 고전적 표현에서 벗어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당신의 신경을 자극할 훌륭한 시리즈"라고 극찬했다.
넷플릭스의 강동한 한국 콘텐츠 총괄 VP는 이 같은 글로벌 인기에 "전 세계 시청자가 한국 콘텐츠를 사랑해주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며 “한국의 훌륭한 이야기를 국가, 언어 및 문화를 초월한 엔터테인먼트 팬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며 앞으로도 국내 창작자들과 함께 협업해 높은 수준의 스토리텔링으로 전 세계 팬들을 즐겁게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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