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공격 당했나.. 20년만에 돌아보는 9·11의 진실[왓칭]
그들에게 9·11은 무엇인가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겼는가, 졌는가
냉정한 질문 던지는 '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인류의 21세기는 9·11과 함께 시작됐다. 좌우 이념 대결과 냉전이 20세기를 관통하는 주제였다면 극단주의와 테러가 21세기의 화두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건이 바로 9·11이었다. 9·11은 초강대국 미국 중심 글로벌 질서에 대한 극단주의 세력의 도전의 서막이었고, 그 서막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20년만에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본편은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20년을 끈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미국은 이겼는가, 졌는가. 극단주의와 계속 부딪쳐 나가야 할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 복잡한 질문거리에 대한 대답을 생각케 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넷플릭스의 5부작 ‘터닝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다.
◇9·11 숨은 원인에서 종결까지 깊이 있게 조명
이 다큐는 9·11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숨은 원인에서부터 종결까지의 과정을 깊이 있게 조명한 수작(秀作)이다. 어느 한쪽의 시각에 경도됨 없이 미국과 탈레반, 알카에다까지 다양한 입장에 선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2001년 911 당일의 생생한 영상과 생존자·목격자들의 증언으로 다큐는 시작된다. 뉴욕 맨해튼 월드트레이드센터와 워싱턴DC 펜타곤을 향해 민항기가 날아가는 장면, 구멍이 뻥 뚫린 초고층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 등은 20년 전 그 날의 트라우마를 강렬하게 소환해 낼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보복 선언과 미국의 강력한 군사 대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연이어 그려지며 자연스럽게 당시의 충격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큐 ‘터닝포인트’가 뛰어난 것은 미국이 벌인 전쟁이 단지 테러, 극단주의와의 대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세계 곳곳으로 하염없이 확대되는, ‘잘못된 과정’까지 정확히 짚어냈다는 점이다. 사상 처음으로 본토가 공격 당한 미국 사회가 엄청난 흥분 속에서 쏟아낸 대처가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옳았다고 해도 현명한 것이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흥분을 넘어 냉정하게 자정(自淨)하는 능력이 사라진 미국 사회가 이후 어떤 결과를 낳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도 이어진다.
다큐는 비행기 납치범들이 어떻게 미국의 최첨단 첩보 시스템을 뚫을 수 있었는지, 초강대국 미국이 당시까지 얼마나 허술한 시스템을 갖고 있었는지, 그 허술함을 알게 된 미국이 테러 방지라는 명분으로 지나치게 강화된 조치를 시행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양산했는지도 조명한다.
◇극단주의는 왜 미국과 대결해야 했나
소련과의 전쟁에서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역사에 대한 잘 정돈된 설명도 돋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의 근현대사는 9·11 테러의 근본 원인과도 관계돼 있다는 게 이 다큐가 던지는 메시지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후, 미국은 아프간에서 소련을 몰아내는 데에만 몰두해 아프간 반군세력인 무자헤딘을 지원한다. 이 과정에서 9·11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이 부상하고, 이들은 소련뿐 아니라 미국을 향한 증오와 적대의 시선을 키우고 있었지만 미국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위협으로 부상한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 극단주의는 왜 미국과 대결해야만 했는지를 암시해 주는 부분이다.
다큐는 미국의 양대 정보기관인 CIA와 FBI가 얼마나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소통하지 못했는지, 1993년 월드트레이드센터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같은 수많은 전조(前兆)들까지 어떻게 무시됐는지도 조명한다. 9·11 후 분노에 사로잡힌 미국은 고문과 감시를 정당화하고, 잘못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라크로 전쟁을 확대하는 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을 마구잡이로 벌였다. 다큐는 9·11 전후(前後)의 미국은 ‘안일(오만)→참사→분노·복수’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고 지적한다.
◇미군을 무력화시킨 끝없는 ‘삽질’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왜 이길 수 없었는지, 미국이 얼마나 황당한 짓을 벌였는지 구체적인 진단도 나온다. 군복 디자인을 공모한다며 숲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아프간에 전혀 맞지 않는 푸른색 얼룩무늬 군복을 도입하고, 고철에 가까운 중고 항공기를 이탈리아에서 대량 들여오고, 아프간의 자생력을 키워주겠다며 느닷없이 염소 개량 사업을 벌이다 실패하고···, 이런 끝없는 ‘삽질’들이 아프간의 미군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과도정부 수반으로 옹립했던 하미드 카르자이가 얼마나 부패한 세력이었는지도 모른 채 끌려다니다가 엄청난 재원만 낭비하고 오히려 탈레반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주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미군 병력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드론을 이용한 ‘정밀 타격’은 주요 표적을 제거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양산하는 부작용도이심각했다. 무고한 희생자의 가족들은 복수를 위해 탈레반으로 들어가고, 이들이 결국 탈레반의 토양이 되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9·11 20주년을 겨냥해 만들어진 다큐는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입성하고 미군이 아프간에서 급히 철수하는 모습까지 담지는 못했지만 향후 전개를 미리 예견한 듯 아프간의 어두운 미래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강대국과 극단주의의 대립에서 희생되는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힘없는 양민들이며 이들이 겪게 될 고초가 얼마나 심대할 것인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조명했다.
주목받는 다큐멘터리 감독 브라이언 나펜베게르(Brian Knappenberger)의 세련된 연출도 돋보인다. 그는 언론이 돈과 권력에 휘둘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깊이 있게 다뤄 호평 받은 ‘침묵을 거래하는 손(Nobody Speak: Trials of the Free Press)(2017)’을 연출한 감독이다. 그가 9·11을 왜 ‘터닝포인트’라고 했을까. 수 많은 함의를 생각해보며 5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절대 나쁜 선택이 아닐 것 같다.
개요 다큐멘터리 l 미국 l 2021 l 5부작(편당 약 60분)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
특징 20주년에 돌아보는 9·11의 진짜 이유는···.
평점 IMDb ⭐8.1/10
넷플릭스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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