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까지 언급하며 연이틀 南에 '손짓'.. 北 김여정의 속내는 [뉴스분석]
"공정성·존중의 자세 유지된다면
종전선언·정상회담도 해결 가능"
美 "남북 대화 지지" 긍정적 평가
바이든 동맹 중시에 南 활용 노려
5개월 남은 대선정국 파장 예고
당장 표면적으로는 일련의 담화가 경색된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화여지는 넓히면서도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주장하는 등 대화조건도 강화한 점으로 봐 낙관적으로만 볼 사안도 아니다. 성급한 대응보다는 담화의 진의를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26일 통일부 등에 따르면 김 부부장은 전날 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공정성과 존중의 자세를 조건으로, 종전선언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정상회담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수뇌상봉(정상회담)과 같은 관계개선의 문제도 건설적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이날 “첫 담화 후 남한 정치권을 주시했다”면서 “경색된 북남 관계를 하루빨리 회복하고 평화적 안정을 이룩하려는 남조선(남한) 각계의 분위기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날 김 부부장의 대화 재개 의지를 담은 담화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이 대화 재개 조건으로 내건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 등 선결 과제를 제시한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읽힌다.
실무 부서인 통일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통일부는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재설치, 정상회담 등 남북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문제를 건설적 논의로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밝힌 점을 의미 있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을 매개로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또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고강도 도발 행위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내놓은 점을 고려하면 김 부부장의 담화엔 대화에 좀더 방점이 찍히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부부장의 담화엔 다목적 배경이 읽힌다. 임기 말의 문재인정부 상황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정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등 여러 환경이 고려됐다는 이야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담화에 대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이 사실상 남측이 북한에 제의할 수 있는 마지막 옵션이자 기회라는 점을 북한이 인식한 것”이라며 “북한이 남측이 어느 정도 실천적인 신뢰조치를 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미국과의 대화에 앞서 남북관계의 복원부터 먼저 시도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어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대화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톱다운 방식을 선호하지 않은 점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북·미 접촉이 이전과는 달리 남북관계를 먼저 통하는 흐름으로 변한 환경을 고려했다는 이야기다.
노랗게 물든 北 들녘 가을 추수철을 앞둔 26일 경기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들녘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전날까지 이틀 연속 남북관계와 관련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파주=이재문 기자 |
김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남측에 ‘긍정적 메시지’를 보내면서 공은 문재인정부 쪽으로 넘어왔다. 우리 정부는 남북경색 국면 타개를 위한 노력이 일부 성과를 보이고 있는 점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이날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는 남북간 원활하고 안정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게 중요한 만큼, 우선적으로 남북통신연락선이 신속하게 복원돼야 한다”며 “정부는 남북통신연락선의 조속한 복원과 함께 당국간 대화가 개최돼 한반도 정세가 안정된 가운데 여러 현안들을 협의·해결해 나갈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전문가들도 관계 개선을 위해 우선 남북이 연락을 주고 받을 연락 수단부터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도 존중과 합의 이행을 위해서는 이른 시일 내에 통신선 복원을 하는 게 첫 단계”며 “결국 상호존중과 합의 이행을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이어 한 템포 빠른 접근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로서는 북한의 진의를 좀 더 파악하기 위해 친서 교환을 하거나 남북대화를 제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조만간 통신선 복구→남북대화→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남북정상회담→추가 군사합의→종전선언 등의 빠른 일정을 소화해 내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내년 2월 개최되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중국 정부는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고 있다“며 “김 부부장의 발언에 비추어볼 때 북한은 내년 올림픽을 계기로 베이징에서 남·북·미·중의 4자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을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 센터장은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앞으로 열릴 남북, 남·북·미·중 대화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런 가운데 남북 당국의 의도와 별개로, 양측의 대화 진척 여하에 따라 5개월 남짓 남은 대선정국에 미칠 파장의 폭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전의 선거처럼 남북관계가 여야의 공방 대상으로 본격 소환될 가능이 크다는 이야기다.
김선영, 이도형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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