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평택·군산·대전·오산 등에 950개 배치[한국 역사를 바꾼 오늘]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2021. 9. 27.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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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미군, 1950년대 후반부터 주한미군 곳곳에 핵무기 배치
과다 배치 문제도 제기, "韓핵무기 사용가능성 최고"
핵무기 사용 위한 실전 훈련도 진행…"익숙해지도록"
우리 국민들 기억에는 희미하지만 1991년 9월 27일은 미국이 세계 곳곳에 배치한 핵무기를 본국으로 거둬들이겠다고 선언한 날이다.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이른바 '핵감축선언(PNI)'이다.

또 다른 핵강국 소련과의 핵경쟁을 멈추고 인류의 평화를 항존 시키자는 선제적 선언이었다.

이 선언에 따라 주한미군이 남한 곳곳에 배치한 핵무기들도 모두 회수해갔다는 것이 '정설'이다.
왜 '사실'이 아니고 '정설'일까?

남한에 미국의 핵무기가 설치된 것은 한 번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한미 양국의 시인도 부인도 않는 전략(NCND) 때문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는 북한에게 핵개발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그동안 남한에 배치한 핵무기에 대한 기록만큼은 철저히 숨기거나 지웠다.

그러나 기록을 숨기거나 지운다고 해서 그 존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CBS노컷뉴스가 미국정부, 연구기관 등에서 입수한 기록과 전문가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한국전 휴전 직후부터 남한에 핵무기 배치를 검토하고 실제로 다량의 핵무기를 주한미군 기지 안에 배치한 사실이 확인된다.

[미국 정부 기밀 해제 문서 다운로드]

▷1956년 11월 1일, 의정부·안양 핵무기 배치 기록

문서1.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org)가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해 공개한 '극동군사령부 운용절차'의 표지(좌)와 핵무기 남한배치 장소가 적힌 '수송'편의 부속문서(우). 부속문서의 핵무지 배치장소로 극동육군 소속 제8 병기판견대가 있는 '의정부', 제24 병기파견대가 있는 '안양리'가 폭탄무기배치(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 장소로 지정돼 있다.(붉은상자)

1956년 11월 1일 생성된 '극동군사령부(FES) 운용절차(SOP)'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핵무기 보관 및 배치 관련 지침을 담은 비밀문서다.

지침은 본문 6개 조항과 그 부속문서들로 구성돼 있다.

본문 1조 '일반' 조항에는 '핵무기(atomic weapon)는 제한적인 획득 가능성과 엄청난 파괴력 때문에 지휘관의 의지를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 절차 수립이 필요하다'고 적혀있다.

본문은 이어 적용범위, 조직·기능·절차, 정보, 통신, 수송 순으로 서술돼 있고 각각의 본문에 부속문서가 첨부돼 있다.

이 가운데 맨 마지막 '수송'과 관련된 부속문서에 핵무기의 저장, 책임, 보고, 관리, 파기에 대해 서술돼 있다.

바로 여기에 각 핵무기의 시리얼번호, 저장된 장소, 책임자, 배치 장소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핵무기가 배치된 부대로는 극동육군 관할 6곳, 극동공군 관할 6곳, 극동해군 관할 2곳이 각각 명시돼 있다.

이 가운데 극동육군 소속 제8 병기파견대가 있는 '의정부', 제24 병기파견대가 있는 '안양리'가 폭탄무기배치(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 장소로 기록돼 있다.

'안양리'는 1950년대 지금의 안양시의 이름으로, 안양에는 1970년 중반까지 무기를 취급하는 '병기(ordnance)대대'가 있었다.(아래 사진)

미국 비밀문서는 1956년 '안양리'에 핵무기를 배치했다고 기록돼 있다. 1969년 안양리(지금의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제83병기대대 모습. 출처: Niel Mishalov


 영국 대외정책분석센터 폴 무어크래프트 국장은 미국이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한 것은 정전협정 13-d항을 파기한 것이라고 자신의 최신 저서 '북한, 세계와 전쟁중'에서 밝힌 바 있다.

▷1977년 대전·군산·오산 핵무기 배치기록

문서2.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org)가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해 공개한 1977년 태평양사령부의 연감 표지(좌). 2권 10장 부대지원활동에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 검사 사실을 기록돼 있다.(우) "6월 6일부터 10일까지 태평양사령부 작전처 장교로 보충된 감사 팀은 한국의 캠프 에임스와 군산, 오산 공군기지에 보관된 핵무기의 물리적 안전성을 점검했다.(이번 연감의 작전 챕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산의 핵무기 저장소는 올해 말에 폐쇄됐다."(붉은상자)

미군은 부대별 연감을 펴낸다. 세계 곳곳에 배치된 미군 부대의 조직, 작전, 무기 체계 및 운용, 장비 및 인사의 변동, 적군의 동향 등 모든 활동 기록이 망라돼 통상 1급비밀로 분류된다.

따라서 열람의 범위 등이 법으로 명시돼 있고, 위반 시 간첩법으로 처벌받는다는 경고 문구도 달려있다.

비밀 해제된 연감들도 민감한 정보들에 대해서는 모두 삭제 처리된 채 공개된다.

그런데 비밀 관련 부수적인 부분에 등장하는 내용이 미처 삭제되지 못한 채 공개되는 일도 간간이 발생한다.

1977년 태평양사령부의 연감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 관련 사항이다.

512페이지 달하는 연감 2권 10장에는 부대 지원 활동이 정리돼 있다. 그 가운데 감사관의 업무가 나온다. 감사관은 사령부의 임무 수행을 점검해 사령관이 지휘부를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1977년 감사관이 부여받은 특별 임무 가운데 하나는 태평양사령부 예하부대에 보관 및 배치돼 있는 핵무기의 안전성을 감사하는 것이었다.

감사관실의 일반적 업무가 설명된 1항에 그해 6월 6일부터 감사관실에서 주한미군 부대인 캠프 에임스, 군산 공군기지,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핵무기의 물리적 안전성을 점검했다고 돼 있다.

캠프 에임스는 지금의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던 미군 부대로 당시에는 미 육군 탄약기지였다. 1991년 반환돼 지금은 육군 군수사령부 예하 부대가 자리하고 있다.

핵무기 '과다' 배치에 미 국방부도 "요구 초과"

 
사진: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org)가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해 공개한 1974년 태평양사령부 연감.
1974년 태평양사령부의 연감에는 더욱 놀라운 내용이 담겨있다. 남한에 핵무기가 과잉 배치됐다는 내부 비판과 걱정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1권 262페이지 실린 '핵무기 배치와 안전'이라는 소제목의 보고서를 보자.

여기에는 태평양사령관이 미국 본토 밖에 배치된 핵무기의 안전 문제에 관심이 컸고 합참과 논의 과정에서 몇 가지 제안을 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다른 곳에서 폐기한 핵무기는 한국 등에 배치하지 말 것, 한국의 안보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단계적으로 (핵) 무기를 빼라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사령관이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등 비이성적인 개인(들)이 많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핵무기 보관 등의 안전문제를 크게 걱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는 국방부 차관이 '서태평양 해안에 보관된 핵무기가 수요를 훨씬 초과한다고 믿고 있다. 사용중인 핵 저장소 숫자를 줄일 것을 제안했다'는 문장도 있다.

'서태평양 해안'은 보고서 맥락상 남한의 서해안 등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핵무기가 우리나라에 배치됐기에 그 같은 우려가 나왔을까?

2002년부터 워싱턴에서 전세계적인 핵무기 개발 동향과 미국 본토 밖에 전개된 미군의 핵무기를 추적해 온 미국 과학자연맹(FAS)의 한스 크리스텐슨 국장은 CBS노컷뉴스와 만나 "한국에서는 1967년 무렵에 정점을 찍어 950개의 핵탄두가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크리스텐슨 국장은 핵무기 및 핵무기 및 시설에 관한한 가장 정확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SIPRI(스웨덴 국제 평화조사연구소)의 연감의 공동집필자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한국에 8종류의 핵무기가 배치됐으며,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가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 전체 양보다도 5배 정도가 더 많았다고 덧붙였다.

남한에 핵무기 배치 이유는 "사용 필요성 가장 높아서"

문서4.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org)가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해 공개한 1976년 태평양사령부 연감.
그렇다면 왜 이렇게 남한에 과도한 핵무기가 배치됐을까?

1976년 태평양사령부의 연감에서 그 단초를 엿볼 수 있다.

이 연감 159페이지에도 '핵무기 배치'라는 소제목의 보고서가 있다.

보고서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1976년 4월, 미국 육군 태평양사령관 지원 그룹장은 랜스 미사일 시스템의 해체 문제를 재개했다. 그룹장은 괌의 무기저장소 통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랜스 대대와 무기를 한국에 배치하고 현재 괌에 보관 중인 육군 무기를 미국본토로 옮길 것을 권고했다. 그룹장은 근거로 한국이 지상 핵무기 사용이 필요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라는 것과 괌에 비축무기(대포 및 지대지미사일)를 보유할 경우 앤더슨 공군기지 또는 해군 탄약창의 새로운 저장 이글루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제시했다."

한국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괌에서 해체되는 핵무기 일부를 한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한국에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도 핵무기가 집중 배치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해주는 보고서다.

▷1991년 상반기 군산 공군기지 핵폭격 훈련

문서5.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org)가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해 공개한 1991년 군산 제8전술비행단의 상반기 훈련 내역을 담은 미공군의 비밀문서 표지(좌). 이 문서 22페이지에는 비행조종사들이 받은 핵공격 훈련 종류가 기술돼 있다.(우) "핵공격 훈련은 두 종류의 비행 프로필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임무 달성 훈련 도중 조종사들이 여러 종류의 핵공격 수단에 익숙해지도록 통상적으로 핵무기를 투하하는 기본적 기초훈련이다. 두 번째 핵공격 훈련은 조종사들이 단일 선박 핵공격 비행을 하도록 훈련시켰다."(붉은상자)

미군은 주한미군에 핵무기를 배치했을 뿐 아니라 그 핵무기를 사용하는 연습, 즉 투하하거나 발사하는 연습도 수행했다.

사용 필요성이 높아서 배치한 만큼 실제 사용에 대비해 실전 훈련을 한 것은 수순이었을 것이다.

군산에 있는 태평양공군(PACAF) 제7공군 예하 제8전술비행단이 1991년 1~6월까지 수행한 훈련을 정리한 미국 공군 비밀문건에는 그해 상반기 제8전술비행단의 훈련 내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23페이지에는 군산 비행단이 그해 공대지 및 공대공 훈련을 전개했으며, 공대지 훈련으로는 다시 무기 공급, 핵공격, 지상공격전술로 나눠 훈련했다고 기술돼 있다.

그중 핵공격 훈련은 두 종류의 비행 프로필 훈련(전투기의 고도, 엔진출력, 속도 등 특징을 익히는 훈련)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하나는 조종사들이 여러 종류의 핵공격 수단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통상적인 기초훈련과, 다른 공군기들과 편대를 이루지 않고 조종사 1명이 1대의 공군기를 타고 적의 표적에 핵무기를 투하하는 비행 훈련을 받았다고 기술돼 있다.

특히 49페이지에 '제8전술비행단의 무기 안전팀은 폭발물, 미사일, 핵에 대한 각각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뛰어난 활동을 해 미공군으로부터 상을 받았다'고 기술돼 있어서 핵폭력 훈련이 가상훈련이 아닌 실전훈련으로 진행됐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twinpin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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