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극 1980
[경향신문]
이번 극은
극과 극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내가 그린 원으로
비집고 들어와
손도 씻지 않고 잠이 들고요
우연이 모래를 의미가 맹물을
삼키고 잡아먹힙니다
그렇게 있잖아요 우리
사십 년 후에도
잠깐 놓아둘 때조차 소름이 돋아서
정확히 보려 하면
정확히 갈라집니다
서춘희(1980~)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나에게만 말할 수 있”(‘부추’)는 비밀을 간직한 사람의 가슴은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할까. 어릴 땐 침묵을 강요당하고, 겨우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땐 스스로 함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살면서 다 드러낼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 감추며 살 수도 없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말은 유효하다. 직접 폭로할 수 없을 때 우회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것마저 조심스러워 문장을 감추고, 비트는 것이 시다.
1980년은 시인이 태어난 해이므로 이번 생은 극(劇)이면서 극(極)이다. “내가 그린 원”은 나만의 절대 영역으로 내 허락 없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세계이지만, 강제로 “비집고 들어와/ 손도 씻지 않”은 채 잠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몰아내야 하지만,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에 파묻혀 맹물같이 지내다가 “사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다. “잠깐 놓아둘 때조차 소름이 돋”는데, 어찌 사십 년을 견뎠을까. 안타까운 건 현재까지도 상황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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