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웃지만 마음은 우울해.. '스마일 증후군'

권대익 2021. 9. 2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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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가 쓰는 건강 칼럼]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 항상 웃는 표정과 말투를 유지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스마일 증후군’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밝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우울감이 심한 상태를 말한다.

감정 노동이 주 업무인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나 인기에 압박을 가진 연예인, 고객을 많이 상대하는 영업 사원 등에게 자주 발생한다. 스마일 증후군은 의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감정 노동에서 느끼는 고통을 표현하는 단어로 자주 사용된다.

"‘죄송합니다. 그러시군요.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써 붙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송하다는 말이 처음에는 안 나왔단다. 모니터 아래 테두리에도 ‘죄송합니다만’으로 시작하는 멘트가 나란히 세 장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무얼까."

<끝없는 “죄송합니다. 그러시군요”… 150원의 감정 노동>이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스스로 통제해야 하는 콜센터 재택 상담사의 감정 노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면서 고객을 만나는 것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상 고객’을 만나게 되면 스트레스는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고객이 말하는 내용이 불합리하더라도 “죄송합니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를 말하다 보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죄송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된다.


◇감정 억압하면 두통·호흡곤란·불면증 등 겪어

감정을 억압하는 것은 감정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포함한 극동 아시아 지역은 서구권에 비해 감정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한국과 미국의 우울증 환자들의 증상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한 결과,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들은 건강염려증, 체중 감소, 불안, 불면증이 미국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반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생각,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비율은 낮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울증이 생겼을 때 미국인보다 신체 증상을 예민하게 느끼고 실제로도 신체 변화를 경험한다. 반면 자신의 기분을 구분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치료하다 보면 우울증으로 예민해서 기력이 떨어진다. 이것을 자신의 기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모든 진료 과에서 많은 진료를 한 뒤에야 신체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진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예민해서 불안해지고 심장이 빨리 뛰면 심장 초음파 검사 등을 한다. 폐 검사와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한 뒤 자신의 예민성에 대해 생각한다.

반면 미국 사람들은 우울하고 예민한지에 대해 스스로 구별을 잘하며 우울증을 먼저 생각한다.

이처럼 감정을 억제해 우울증에 이르게 되면 자신이 우울하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흔한 것은 두통, 근골격계 통증, 호흡곤란, 불면증, 어지럼증 등이다. 여러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해도 딱히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고 시간과 비용만 많이 들게 된다.

감정을 억압하기 때문에 신체화하게 되고 신체화한 증상 때문에 다시 우울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예민한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매우 예민해지면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는, 간직할 필요 없는 상처들을 지나치게 오래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뭘 하러 부엌에 왔는지, 양치질을 했는지, 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등은 잊어버려 걱정한다. 이는 걱정이 많아 집중력이 떨어져 생긴 결과일 뿐 대개 치매와 무관하다.


◇마음을 편히 해주는 '안전 기지' 필요

힘든 고객을 만나 정서적으로 소진됐을 때, 일이 많아 지치고 힘들 때에는 내 마음이 한계에 도달하기 쉽다.

우울증ㆍ불면증ㆍ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악화하기 전에 스스로 마음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 달 앞을 걱정하면 한 달 치 걱정이 쌓이고 1년 치를 걱정하면 1년 치 걱정이 더 쌓인다. 죽을 때까지 걱정하면 예민한 사람은 ‘죽음에 대비하는 걱정’까지 하게 된다.

‘안전 기지(Secure base)’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불안하고 힘들 때 마음을 편하게 안정시켜 주는 일을 의미한다. 취미 생활, 반려 동물, 나를 잘 도와주는 담당 의사, 친한 친구 등 나의 예민성을 ‘0’으로 만들 수 있는 안전 기지를 만들 수 있다면 이 같은 일을 더 편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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