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온다

한겨레 2021. 9. 2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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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원철스님의 소엽산방]선시종가1080 /

6.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다

사진 픽사베이

(본문)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가워 고기가 물지 않으니

빈배에 가득히 허공의 밝은 달만 싣고 돌아오네.

이 시의 저자인 화정덕성(華亭德誠)선사는 절강(浙江저장)성 소주(蘇州쑤저우) 화정현(華亭縣) 오강(吳江)에서 뱃사공 노릇을 하며 수행했다. 도반인 도오(道吾769~835)가 천거한 선회(善會805~881)를 만나자마자 한눈에 인물 됨됨이를 알아보았다. 그 자리에서 물에 빠뜨리고는 배 위에서 생사(生死)에 대한 질문을 던져 그의 안목을 열어준다. 법을 전한 후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듯 얼마 후 당신도 배를 뒤집고는(覆船) 종적을 감추었다. 그로 인해 복선(覆船)이라는 별호가 또 생겼다. 이미 오랫동안 선자(船子) 즉 ‘화정의 뱃사공’으로 불렀다. 생몰연대조차 불분명하지만 삶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한지라 『조당집』권5 『전등록』권14에 행장이 남아있다. 약산유엄(藥山惟嚴751~834)-화정덕성-협산선회로 그 법맥이 이어졌다.

(해설)

본래 시조나 한시는 제목이 없다. 편의대로 보통 첫줄을 제목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것은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뒷날 누군가 ‘귀주재월(歸舟載月 달빛만 싣고 배가 돌아오다)’이란 그럴듯한 제목을 붙였다. 이 시가 불가(佛家)에서 유명해진 것은 금강경 때문이다. 영원한 베스터셀러 금강경에 해설을 달면서 야보도천(冶父道川) 선사가 이 시를 빌려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인용했다. 먼저 6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바른 믿음은 흔하지 않다)에 “물이 차고 밤도 추워 고기 잡기 어려워 빈 배에 머물러 있다가 달만 싣고 돌아오네(水寒夜冷魚難覓 留得空船載月歸)”라고 했다. 31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알음알이를 내지 않다)에는 “천길 낚시줄을 바로 아래 드리우니 한 파도가 일어나자마자 만갈래 파도가 뒤따르네.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가워 고기가 물지 않으니 빈배에 가득히 허공의 밝은 달만 싣고 돌아오네(千尺絲綸直下垂 一波纔動萬波水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라고 한 것이다. 이 시의 전문은 『오등회원(五燈會元)』권5 ‘선자덕성’선사 편에 나온다. 도발청파(棹撥淸波푸른 파도를 헤치고 노를 젓다)로 시작되는 발도가(撥棹歌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래) 가운데 압권부분이라 하겠다.

사진 픽사베이

낚시가 꼭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 본명:姜尙)은 일찍이 곧은 낚시로 세월을 낚다가 서백(西伯)을 만나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무왕(武王)을 도와 주(周)나라 건국에 공헌하였다. 낚시군을 강태공(여상의 본명은 강상이다.)을 가르키는 말이 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선자덕성도 협산신회를 만나서 “날마다 곧은 낚시로 고기를 낚다가 오늘에야 한 마리 낚았도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했다. 사람을 낚는 것도 낚시질인 것이다. 이제는 인터넷 용어로도 굳어졌다.

시의 원저자는 선자덕성이지만 대중화의 제일공신은 단연 야보도천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도 청원유신(靑源惟信 ?~1117) 등 몇몇 선사들이 즐겨 사용했지만 성철(1912~1993)스님으로 인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물론 원저자의 공덕이 가장 크겠지만 대중화의 공로도 그 못지않다고 하겠다. 요즈음 갖가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지기 곡을 리메이크하여 부르는 가수에게 보내는 최고의 칭찬이 “이거 내 노래 맞아요?”라는 심사평이다. 같은 곡이지만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색깔을 내기 때문이다. 같으면서도 다르다.

학인시절에는 의무적으로 외워야 할 과제가 있다. ‘아침종송’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말 그대로 새벽예불 때 법당에서 작은 종을 치면서 하는 염불이다. 그 속에서 이 구절을 처음 만났는데 그 풍광이 눈 앞에 그려지면서 종치는 것 조차 잊어버릴 만큼 전율했다. 뒷날 금강경을 보면서 야보송(冶父頌)이라는 것을 알았고 훗날 선어록을 보다가 원저자가 화정덕성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시의 감성에 취하다보니 정작 알아야 될 금강경 본문내용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신줄을 놓는 순간 경(經)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詩)공부가 되기 십상이다. 경구는 경구대로 빛나고 싯구는 싯구대로 아름답지만 같이 합해지니 금상첨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눈길이 오래 머무는 까닭은 논리보다는 감성이 훨씬 더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정서는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송(唐宋) 분위기는 그대로 조선으로 옮겨왔다. 월산대군(1454~1488 조선 제9대왕 성종의 형)도 비슷한 내용으로 시조를 남겼다.

“추강(秋江가을 강물)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그로부터 삼백년 후 『풍서집(豊墅集)』18권을 남긴 이민보(李敏輔1720~1799 공조·형조판서 역임)는 월산대군의 색깔을 그대로 이어받아 한시 형식을 빌어 재창작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추강에 밤이 이미 깊은데(秋江夜已心)

빈 섬에 물결은 참으로 차갑네.(洲虛波正寒)

숨은 물고기에게 미끼를 던져도(投餌與潛漁)

끝내 낚싯줄에 올라오지를 않네.(終不上釣竿)

갈꽃에는 서리가 서걱거리는데(蘆花霜浙瀝)

빈 배에 달빛을 싣고 돌아오네.(空船載月還)

글 원철 스님/불교사회연구소장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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