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여정 "이중기준 철회, 눈에 띄는 실천을" 남측에 공 넘겨

박은경 기자 2021. 9. 2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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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관련 이틀 연속 담화

[경향신문]

연락사무소·정상회담 등 거론
미 제재 완화 ‘중재 역할’ 압박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이틀 연속 남북관계 관련 담화를 발표하고 종전선언에 이어 남북정상회담까지 꺼내며 대화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두 번째 담화에는 유화적 메시지를 강조하면서도, 남측의 ‘이중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에 대한 “눈에 띄는 실천”을 하라고 더 분명한 요구를 담았다. 북한이 종전선언 제의에 대한 공을 다시 남측으로 넘기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 관련기사 2면

김 부부장은 지난 25일 오후 9시쯤 발표한 담화에서 “의의 있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수뇌상봉(정상회담)과 같은 관계 개선의 여러 문제도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이 앞서 지난 24일 오후 담화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의를 “좋은 발상”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한 것에 비해 더 구체적인 유화책을 거론한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라고 전제했지만 김 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생이고 대외대남 업무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뜻으로 해석된다.

김 부부장이 이례적으로 같은 사안에 대해 이틀 연속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의도는 분명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부부장은 24일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으로 “지독한 적대시 정책, 불공평한 이중기준 먼저 철회”를 언급했는데, 25일에는 선결조건을 위한 남조선 당국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조속한 행동을 촉구했다. 미국이 북측에 대화에 나오라고 손짓만 할 뿐 유인책은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도록 압박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전선언을 소재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만들고 한국의 중재나 설득으로 미국의 적극적인 협상을 유인하는 수순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 “신중 접근” 미 “남북 대화 지지” 원론적 입장

김 부부장의 연속담화가 종전선언 제안을 활용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의도란 풀이도 있다. 지난 4월 말 대북정책 검토를 끝낸 바이든 행정부는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을 하겠다는 것 외에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종전선언 논의에 응하는 과정에서 대북정책 방향이 좀 더 드러날 수 있고, 북한은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제시할 공간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정세 악화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북한이 대화 재개를 위한 요구사항을 구체화한 것은 향후 남북, 북·미 협상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북측은 특히 남측의 이중기준에 대해 “절대 넘어가줄 수 없다”고 못 박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한 남측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도발”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최근 북한은 한·미 양국이 개발·배치하는 전략 무기를 문제 삼으면서 자신들의 무기 개발과 무력 시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의 ‘이중잣대’ 주장은 핵미사일 개발에 부과된 제재를 무력화하고, 추가 실험을 위해 명분을 쌓으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반면 남측이 철회해야 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내용과 주체를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의도적 모호성으로 향후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상황에 따라 대남 유화책과 강경책을 선택하는 데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김 부부장은 “앞으로 ‘훈풍’이 불어올지 ‘폭풍’이 불어올지 예단하지 않겠다”며 대화와 도발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 두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대화 재개를 위해 미국의 정책전환을 이끌어내야 하는 고민을 떠안게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26일 “북한이 제시한 선결 조건들이 많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25일(현지시간) “미국은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을 지지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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