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라 오 "나와 사회 사이 부조화의 감각..아시아계로서 발언하는 이유" [인터뷰]

김지혜 기자 2021. 9. 2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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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넷플릭스 <더 체어> 제작 책임자이자 주연…샌드라 오 인터뷰
아이비리그 가상의 대학 영문과 첫 유색인종 여성 학과장 역할
인종·성·나이 등 온갖 갈등 맞서
아시아계 혐오 반대 집회 나선 건 “내재적 인종주의 향한 목소리”
할리우드 ‘최초’ 타이틀 책임감보다는 “진실한 방식으로 내 일을 할 뿐”

넷플릭스 시리즈 <더 체어>의 한 장면. 샌드라 오는 미국 아이비리그 가상의 대학 펨브로크 영문학과 최초의 유색 인종 여성 학과장으로 등장한다. | 넷플릭스 제공

미국 아이비리그 가상의 대학 펨브로크, 영문학과에 최초의 유색 인종 여성 학과장이 탄생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의 이름은 김지윤. 여성이고 유색인종이며 싱글맘인 그에게 학과장이라는 ‘자리’의 의미는 남다르다. “펨브로크를 21세기로 이끌 사람은 김 교수밖에 없다”는 아찔한 압박과 “저 여자가 들고 있을 때 (학과의 문제가) 폭발하길 바라”는 조용한 혐오가 그의 자리로 쏟아진다. 문학의 위기, 노인과 유색 인종 채용, ‘나치 경례’ 등을 둘러싼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까지 현대 사회의 가장 문제적인 이슈들이 당장 답을 내놓으라며 지윤을 닦달한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체어> 속 이야기다. ‘최초의 유색 인종 여성 학과장’이란 이유로 자본주의·백인 중심주의·성차별·연령주의 등을 둘러싼 첨예한 이슈들을 온몸으로 받아낸 지윤 역을 연기한 이는 바로 한국계 캐나다 배우 샌드라 오(50)였다. 아시아계 여성 배우라는 이유로, 30년이 넘는 배우 경력 내내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해야 했던 그의 삶은 지윤과 꼭 빼닮아 있다. <더 체어>의 제작 책임자이자 주연배우인 샌드라를 지난 23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더 체어>의 한 장면. 김지윤은 유서 깊지만 현재는 인기 없는 영문학과를 이끌어 가야 한다. 학과에는 캔슬 컬쳐, 문학의 위기, 인종 갈등 등 다양한 문제가 불거진다. | 넷플릭스 제공


샌드라는 BBC 드라마 <킬링 이브> 마지막 시즌을 촬영하며 영국 런던에 머물고 있다. 지난달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런던 시사회에 참석해 출연진과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샹치 역을 맡은 배우 시무 리우는 “아시아인이라 자랑스럽다”는 샌드라의 말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그의 팬임을 밝혀 화제가 됐다. <그레이 아나토미>부터 <킬링 이브>까지 인기 프로그램에서 주역을 꿰차며, 아시아계 배우로서 자신의 인종과 정체성에 대한 발언을 이어온 샌드라에 대한 존경을 표한 것이다. 샌드라는 지난 3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아시아계 혐오 반대 집회에 참석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 안에서 내가 잘 드러나지 않고, 똑같은 수준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주류에서 내가 갖고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감각이 내게는 있습니다.” 샌드라는 인종에 대한 적극 발언을 이어가는 이유를 “내재적 인종주의 때문”이라며 이같이 이야기했다. “백인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자본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내가 사회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거나 사회가 선호하는 어떤 그룹에 내가 들어있지 않다는 감각을 느낄 때 찾아오는 부조화가 계속해서 발언을 이어가는 동력이 됩니다.”

그를 비롯한 아시아계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할리우드는 변하고 있다. <더 체어>를 비롯해 <샹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 유색 인종, 특히 아시아계 서사를 앞세운 작품들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코로나19 이후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유색 인종의 삶을 재현하는 것과 실제 삶에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샌드라는 “배우 생활을 하며 받았던 질문 중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며 그 이유를 “저를 아시아인으로서 소외시키려는 의도가 없는, 내부의 시선에서 나온 질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답변은 “큰 관계가 있다”는 것. “이미지와 이야기가 어떤 국가 정책보다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미지, 이야기라는 것은 단순히 긍정적이고 정돈된 것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간의 깊은 이해를 가능케 하는 다양한 인종들의 진짜 이야기를 의미하죠.” 샌드라는 영화 <조이 럭 클럽>(1993)을 보고 나오며 눈물 흘렸던 날을 떠올렸다. 이전까지는 유례 없던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영화였다. “그때 비로소 세상 속에 있는 나를 보게 되고, 나를 이해하는 감각을 느꼈어요. 나의 이야기를 (미디어를 통해) 보는 것에는 회복적인 힘이 있습니다.”

<더 체어>의 김지윤은 영문학과 최초의 유색 인종 여성 학과장으로서 정치적으로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만한 마땅한 권력은 부여받지 못한다. 넷플릭스 제공


<그레이 아나토미>의 크리스티나 양, <킬링 이브>의 이브 등 매력적인 한국계 인물을 연기해 왔지만, 샌드라에게 <더 체어>의 지윤은 한층 특별하다. <더 체어>의 지윤은 그가 처음으로 만난 한국 이름의 배역이자 유머 감각이나 대화 방식, 패션 취향 등에서 자신과 닮은 점이 가장 많은 배역이었다. <더 체어>는 돌잡이부터 사소한 한국어 대화까지 한국인과 한국 출신 교포들만 공유하던 삶의 조각을 전 세계 시청자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이야기’와 ‘이미지’로 새겨 넣는다. 그럼에도 샌드라는 자신의 작업이 ‘소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누군가 <더 체어>를 보고 제가 <조이 럭 클럽>을 봤을 때와 같은 경험을 한다면 정말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이 한 장의 차이긴 하지만 아주 중요한 한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저는 정말 있을 법한 삶을 그려내는 데 더 집중합니다.”

아시아계 여성 배우로서 늘 함께하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사실 이 질문이 부담”이라 답하며 “많은 경우 ‘유색 인종에게 최초란 곧 부담일 것’이라는 백인들의 스토리를 지지하는 사례로 쓰이는 질문이기 때문”이라며 날카롭게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한국인 독자’들에게 전해진다면 분명히 다른 의미가 될 것임을 인정하며, 소수자 정체성을 안고 ‘최초’의 순간을 통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최초’라는 수식어에 주어진 책임감에 너무 집중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비유한다면, 저는 그저 좋은 모범을 보일 뿐이고 아이에게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와 공간을 남겨주는 것입니다. 제가 책임감을 느끼는 일은 그저 가장 진실된 방식으로 내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 일을 사랑하고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더 체어>에는 돌잡이, 한국어 대화 등 한국인, 교포만 공유하던 문화적 요소들이 전세계 시청자들이 공유하는 이야기 속에 재현됐다. | 넷플릭스 제공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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